노모 짓밟은 아들의 탈을 쓴 ‘악마’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07년 여름 이른 아침 진천경찰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한 강력반 형사가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동료 형사들에게 착잡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담당 형사가 연신 한숨을 내쉰 이유는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등 애를 먹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피의자와의 과거 인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피의자로부터 혐의를 자백받고 모든 조사가 순조롭게 이뤄졌지만 담당 형사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이번에 진천경찰서 강력 1팀 이상익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끔찍하게 살해한 한 40대 남자의 패륜행각에 대한 얘기다. 특히 경찰에 검거된 이 남자는 이 형사의 초등학교 시절 그 학교에서 소사로 근무했던 아저씨였다. 20여 년 전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착실한 소사생활을 했던 이 씨를 ‘살인범’으로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2007년 7월 21일 새벽 5시경. 진천경찰서 강력반에 한 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한 사람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에 사는 이재복 씨(가명·46)였다. 몹시 당황한 듯 남자의 말투에는 일관성이 없었으며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남자의 진술만으로는 ‘사고’인지 ‘사건’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고 이내 문제의 집 안방에서 처참하게 죽어있는 노파를 발견했다. 이 씨의 노모 임순례 씨(가명·78)였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임 노인은 머리에 상당량의 피를 흘린 상태로 죽어 있었다. 집 마당과 집안 곳곳에 혈흔이 낭자한 것으로 보아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사망한 지 3~4시간이 지난 상태였는데 사인은 놀랍게도 흉강내 출혈이었다. 이는 누가 임 노인의 가슴을 마구 짓밟았음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 노인은 가슴뿐 아니라 온몸이 시커먼 멍투성이였다. 성한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팔순이 가까운 노인을 이토록 잔인하게 폭행해 살해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한술 더 떠 범인은 피묻은 옷을 벗기고 말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놓았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한 폭행치사였다. 죽은 사람이 옷을 갈아입을 리가 없지 않은가. 힘없고 나약한 노파를 누가, 왜 죽였을까. 없어진 물건이나 금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점은 범인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금품을 노린 강도가 아니라면 원한이라는 얘기. 하지만 그와 같은 원한을 일순간에 찾거나 추리해내기는 어려운 일. 눈살을 찌푸리며 현장을 살펴보던 형사들은 얼마 안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피살자의 아들이자 최초 신고자인 이 씨로부터 뭔가 미심쩍은 정황을 포착하게 된 것.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임 노인의 아들 이재복은 신고 당시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등 석연찮은 기미를 보였다. 그는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이 씨는 그때까지도 술기운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특히 그는 혈흔이 묻어 있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몸 곳곳에도 혈흔이 묻어있더라.”
형사들이 보기에 이 씨는 분명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집 마당에서 발견된 임 노인의 피묻은 옷가지도 범인이 숨기려고 한 것치고는 어설펐고 피투성이 옷을 입은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해대는 이 씨의 모습은 ‘수상함’ 그 자체였다. 이어지는 이 형사의 얘기.
“하지만 이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형사들이 추궁했지만 이 씨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니 어머니가 죽어 있었다’는 진술만 반복했다. 여느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재복 역시 무조건 발뺌부터 했다. 이 씨는 군 복무시절 입은 화상으로 인해 평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이웃들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해오던 이 씨는 개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날도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고 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에 만취한 상태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특히 사건 발생 추정시각 이 씨는 집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어머니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이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발견된 임 노인의 옷가지를 이 씨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것 좀 봐라. 그리고 당신 옷과 몸에 묻어있는 혈흔은 뭐냐. 조사해보면 다 나온다.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설득했다.”
얼마나 달랬을까. 잠시 후 이 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담담히 입을 열었다.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털어놓았다. 도대체 그날 밤 이 씨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씨는 수년 전 아내와 이혼한 후 아들과 함께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왔다고 한다. 이 씨는 군복무 시절 입은 화상으로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매달 소액의 돈을 받아 왔는데 특정한 직업이 없었던 그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며 빠듯하게 살아오던 이 씨에게는 남모를 가족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돈 때문이었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아버지가 다른 남매 간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평소 술을 즐겨 마셨던 이 씨는 술김에 누나 집으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매형과도 적잖은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이웃들에 따르면 이 씨는 평소엔 온순했지만 술을 마시면 성격이 거칠어졌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지는 이 형사의 얘기.
“사건 당일 이 씨는 낮부터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가 나더라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모시는데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누나가 관리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불만스러웠다는 것. 그동안 이 문제로 누나와 수없이 다퉜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씨의 가슴 한켠에는 깊은 원망과 분노가 쌓이게 됐다고 한다. 술김에 북받치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이 씨는 그 길로 누나네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그날 밤 누나 집으로 쳐들어간 이 씨는 다짜고짜 ‘통장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나의 반응은 더없이 싸늘했다. 이 씨의 누나로서는 동생의 술주정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었다. 이 날 역시 만취상태로 쳐들어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이 씨의 행동은 누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특히 이 씨의 누나가 보기에 이 씨는 돈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누나로서는 고령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통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머니는 내가 모시고 사는데 누님이 무슨 권한으로 통장을 관리하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이 씨의 누나는 “너 같은 놈에게 어떻게 통장을 맡기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며 매몰차게 대했다. 핀잔만 들은 이 씨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됐고 그것이 이날 발생하게 될 비극의 발단이었다. 이 형사의 얘기.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이 씨는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분을 참지 못해 한참을 씩씩거리던 이 씨는 결국 집안에 있던 어머니 임 노인을 붙들고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왜 아들인 나를 두고 딸에게 통장을 맡기느냐’ ‘통장을 내게 넘겨달라’ ‘어머니가 나한테 통장을 주면 끝나는 거 아니냐’며 따졌다고 하더라. 그러나 임 노인은 ‘자꾸 그러지 마라. 누나가 관리하게 그냥 놔둬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누나는 따로 살긴 했지만 임 노인을 끔찍이 생각하는 효녀였다고 한다. 하지만 누나를 두둔하는 임 노인의 태도에 이 씨는 더욱 격분하게 된다. 술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들을 보다 못한 임 노인은 쓴소리를 하게 됐고 모자는 언성을 높이며 격하게 다투게 된다. 어머니까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자 분을 이기지 못해 펄펄 뛰던 이 씨는 그 새벽에 또다시 누나 집으로 쳐들어가려 했다고 한다. 임 노인이 볼 때 아들이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잡고 말렸다.”
이 씨는 자신을 따라 나오며 필사적으로 말리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밀어뜨렸다. 이 씨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힌 임 노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평상시라면 정신이 번쩍 들었을 상황이었지만 이 씨는 이미 만취해 제 정신이 아니었다. 가슴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누나에 대한 분노와 미움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표출됐다. 이 씨는 쓰러진 어머니의 온몸을 폭행하고 발로 차는 것도 모자라 가슴을 발로 마구 밟았다. 그 순간 이 씨의 머릿속에는 누나에게 돈을 맡긴 어머니에 대한 원망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이 씨의 무자비한 구타를 이기지 못한 임 노인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 씨는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어머니의 사체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행동에 이 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덜컥 겁이 난 이 씨는 다급히 어머니의 사체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히고 반듯하게 뉘여놓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
이렇게 해서 사건은 발생 수 시간만에 그 전모를 드러내며 마무리된다. 하지만 돈 80만 원 때문에 팔순 노모를 살해한 사건은 평화롭기만 하던 진천 읍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씨 역시 졸지에 살인범이 된 자신의 처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더없이 괴로워했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형사는 “현장에 모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 씨는 지능범은 아니었다. 혐의를 털기 위해 그럴싸한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상황을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단순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술김에, 홧김에 저지른 범행이라 더욱 그랬다. 그는 처음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했다’고 둘러대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그것은 살인을 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본능적인 방어행동이었을 뿐 지능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 같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름대로 지어낸 알리바이가 터무니없이 허술했을 뿐 아니라 미처 피가 마르지도 않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몸을 떨면서 어머니의 사망을 얘기하던 이 씨의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는 것. 술기운에 이성을 잃고 노모를 살해한 이 씨는 모든 진술을 마친 후 뒤늦게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