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10곳 열면 10곳 다 망한다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 늘어서 있는 변호사 사무실 곳곳에 임대를 알리는 광고물이 붙어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병원 업계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업계 사정을 묻는 질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등록금은 높고, 수련과정은 길고, 돈은 못 버는 의사·한의사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의대·한의대 수시 경쟁률은 여전히 20 대 1을 웃돌 정도로 치열하다. 여전히 의대·한의대 진학을 성공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보기 때문이다.
현실은 다르다. 한의사의 경우 사정이 가장 나쁘다. 6년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도 봉직의로 일하며 경험을 쌓아야 개원을 할 수 있다. 봉직의 월급은 200만 원에서 250만 원 수준이다. 개원을 한다고 해도 전망이 좋지 않다. 각종 건강기능식품이 붐을 이루면서 보약을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줄어 웬만해선 큰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침 치료만으론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 업계 역시 전망은 밝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요양기관 개폐업 현황’에 따르면 2013년 개업 의원 대비 폐원 비율은 83%에 달했다. 동네 의원 10개가 개원하는 사이 8개는 문을 닫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5년간 폐업한 의원은 연 평균 1500개소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개업 의원 대비 폐원 비율은 83%에 달했다.
의사들의 개원을 돕는 컨설팅 업체 골든와이즈닥터스의 박기성 대표는 “요즘은 혼자 동네 의원 개원해서는 돈이 안 된다. 때문에 동료 의사들과 큰 규모로 공동 개원하는 사례가 많은데, 투자금액이 많은 만큼 망할 때도 크게 망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도 불안하다보니 입지선정부터 개원 후 관리까지 꼼꼼히 따지는 편이다. 의사들이 힘들어진 시점인 약 5년 전부터 개원컨설팅 분야가 성장세다”고 설명했다.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꼽히던 약사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셔터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던 여성 약사의 경제력은 이전만하지 않다. 2013년 개국 약국 대비 폐업 약국 비율은 103.9%를 기록했다. 10개 여는 동안 10개가 망한다는 뜻이다. 동네 약국이 살아남을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약사 시험 제도가 바뀌어 준비 기간과 비용은 더 늘어났다. 이전에는 4년제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시(약사 국가시험)을 치르면 돼, 4~5년이면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피트·PEET)이 도입된 후로는 자격증 취득까지 걸리는 기간이 6~7년으로 늘어났다. 일반 대학에 진학해 2년을 공부하고 다시 피트를 공부해 약대에 진학하는 방식이다. 대학 재학 중에 피트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지만 보통은 2학년을 마친 뒤 휴학계를 내고 1년여 정도 시험공부에 집중한다. 물론 피트 시험에서 낙방해 재수, 삼수를 하는 이들도 흔하다.
서울 유명 약대의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 아무개 씨(27)는 “요즘은 전문직 자격증이 있어도 원래 집안이 잘 살지 않으면 똑같이 월급쟁이 신세다”며 한탄했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따도 첫 직장은 일반 약국의 ‘페이 약사’다. 동네 약국에서 꼬박 일하고 월급은 일반 대기업 직장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김 씨는 “약사 수가 많이 늘어나 월급 수준은 점점 떨어질 거다. 한 해 1000명 수준이었던 약사 배출 인원이 6년제로 바뀌면서 1500명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약국 차리는 게 제일 편하고, 잘하면 돈도 되겠지만 갓 졸업하고 무슨 돈으로 약국을 차리나. 약국이든 제약회사든 들어가서 월급쟁이 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털어놨다.
공인회계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가에서 CPA자격증 열풍이 불었을 정도로 공인회계사의 인기는 높았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업무강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급여수준은 기대했던 것보다 낮아졌다. 또 유명 회계법인에 들어가도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전체 공인회계사회 회원(1만 7269명) 중 휴업한 회원이 34.5%(5965명)에 이른다.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려면 공인회계사회에 매년 30만 원의 회비를 주고 회원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금융 공기업 등의 직장으로 이직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휴업회원이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4대 회계법인의 감사팀에서 일하는 이 아무개 씨(27)는 “회계사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내 수입이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나 많이 받고 이 고생하면 덜 억울하겠다”고 털어놨다. 이 씨의 경우 2년 6개월의 준비 끝에 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준비기간에 들인 돈도 만만치 않다. 종합반 기본 코스의 경우 3개월에 200만 원이고, 필요하면 과목별로 추가로 수강해야 한다. 또 책값만으로도 등골이 휠 정도다.
어렵사리 딴 자격증으로 유명 회계법인에 들어왔지만 첫 월급은 기대 이하였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적은 월급에 야근, 술자리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 씨는 “입사한 100명 중 10명은 입사 첫 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연초 기업 감사 시즌이 돌아오면 거의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한다.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날도 많다. 또 기업별 감사가 끝날 때마다 기업 관계자들과 술자리도 갖는다. 길게는 1~2주, 짧게는 3~4일 단위로 폭음을 할 때도 있다. 이 씨는 “고생해서 자격증 땄는데, 일반 회사원보다 더 힘들게 일하니 가끔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때 ‘사’자 직업의 대표격이던 변호사 역시 사정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 로스쿨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변호사 배출인원이 연간 1500명 수준으로 늘었다. 업계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변호사’라는 말이 돌 만큼 무한경쟁시대다. 3000여만 원의 등록금을 내면서 로스쿨을 졸업해도 적은 급여에 만족하며 월급쟁이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일하는 김 아무개 씨(31)는 “급여는 10년 전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김 씨는 “국선 변호사의 경우 10년 전부터 월급이 800만 원으로 변동이 없었다. 그 안에서 직원 월급, 사무실 관리비 등을 다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안정적 월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선 변호사 지원율은 높아지고 있다. 사무실을 개업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형로펌의 경우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업무를 해내야 한다. 김 씨는 “이전에 일했던 중견 로펌에선 1년에 딱 5일 쉴 수 있었다”며 업무강도를 설명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법정공휴일도 챙기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로펌의 임금수준마저 위협받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를 대거 채용해 무한경쟁을 시키는 전략을 로펌들이 택하고 있다. 김 씨는 “로펌이건 기업 사내변호사건 모두 계약직이다. 물론 해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실력이 없으면 일을 맡기지 않는 식으로 퇴사 압력을 준다”고 얘기했다. 이전에는 이런 압박이 이어지면 자존심 때문에 그만두고 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자존심을 구기더라도 일단은 버티고 보는 변호사들이 많다. 김 씨는 “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면 로펌을 나가도 방법이 없다. 전문직에게도 체감경기는 너무 춥다”고 하소연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전문직 결혼시장서 찬밥 까닭 업무는 ‘어마무시’ 월급은 ‘애걔걔’ 직업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는 아마 결혼시장에서의 평가일 것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결혼시장에서 평가 역시 점점 하락하고 있다. 특히 ‘개천에서 난 용’들은 더욱 외면받고 있다는 게 전문직 종사자들의 얘기다. 남성 변호사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40만~50만 원 정도면 마음이 맞는 여성이 나타날 때까지 제한 없이 소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변호사 내에서도 등급이 나뉜다는 게 김 씨의 말이다. 본인의 경제적 능력보다는 부모님의 ‘스펙’이 중요하다. 내세울 건 아들에 대한 자부심 하나뿐인 시어머니의 ‘갑질’을 반기지 않기 때문.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의 남성 변호사를 선호한다. 물론 그 중에서도 외모와 집안을 따지는 건 기본이다. 회계사도 비슷하다. 여성 회계사의 경우 높은 업무강도와 예상외로 적은 소득 때문에 결혼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회계사 이 씨는 “주변에 여성 회계사들은 같은 회계사 남성과 결혼한 이들이 많다. 야근이 많고, 술자리도 잦은 업무환경을 이해해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남성 회계사는 여전히 결혼시장에서 상위 ‘클래스’를 차지한다. 하지만 회계사 안에서도 등급이 나뉜다. 야근이 많고 업무 강도가 높은 감사 파트의 경우 세금, 컨설팅 분야 회계사보다 저평가를 받는다고 이 씨는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박미숙 이사는 “최근에는 공기업,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직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적 위상 저하와, 경제력만이 아닌 직업적인 안정성과 보장성, 삶의 질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경향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서] |
범죄 유혹에 빠져드는 전문직들 짝퉁 비아그라 팔고 허위 진단서 떼주고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전에 없이 낮아지면서 이들의 극단적 선택도 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문직종의 자살률이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직업별 자살자 비율은 전문직과 관리직종에서 크게 늘고 있다. 2004년 1.6%에 그쳤던 전문직 자살자 비율은 2013년 7.6%로 증가했다. 전문직까지 덮친 무한경쟁에 상대적 빈곤감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약국 개업이 여의치 않자 약사 면허를 대여해 주고 돈을 받아 챙긴 20대 약사가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약사 A 씨(25)가 의사 부인 B 씨(51)에게 면허 대여료 300만 원을 받고 약국 개업을 도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B 씨는 남편 병원이 있는 상가 1층에 약국을 개업하기 위해 A 씨를 섭외해 면허 대여료와 근무수당을 주며 범행을 공모했다. 의사들이 가장 유혹에 빠지기 쉬운 건 보험사기다.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주며 보험사기를 도우며 대가를 받는 방식이다. 지난해 3월에는 근로복지공단 직원과 의사까지 개입해 67억 원대 범행을 벌인 보험사기단이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범행에 가담한 사람만도 170여 명이었다. 범행을 주도했던 의사 권 아무개 씨(47)는 허위진단서 발급, MRI사진 바꿔치기, 척추 수술을 해주는 방식을 썼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2013년 9월에는 수감자에게 접근해 판검사 인맥을 동원해 형집행정지를 시켜주겠다고 속인 뒤 8600여만 원을 뜯어낸 변호사가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2억 5000만 원을 받아낸 변호사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범죄 행위로 기소된 변호사가 지난 2010년부터 꾸준히 늘어 2013년에는 566명에 달했다. 4년 사이에 74.2%나 는 수치다. 범죄 유형 중에서는 재산범죄가 가장 많아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