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땐 그룹 재무 개선·개인 지분 현금화 가능…AI·HBM 성장에 핵심 소재 기업 포기 부담

SK그룹은 지난해 12월 (주)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위한 가격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SK(주)가 직접 보유한 지분 51%와 TRS(총수익스와프)로 연결된 19.6% 등 지분 70.6%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이 TRS를 통해 경제적 권리를 가진 나머지 29.4%는 동반 매각하거나 SK 측 거래가 끝난 뒤 별도로 협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SK실트론 매각 본계약 체결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매각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6월 30일 SK실트론 평가서에서 “본계약 체결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가운데 매각 무산 가능성도 잠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AI·HBM 수요 확대로 SK실트론의 그룹 내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점을 매각 무산론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SK실트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회로의 기초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얇은 판)를 생산하며, SK하이닉스의 전체 웨이퍼 구매액 가운데 SK실트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다. 300㎜ 웨이퍼 시장에서 점유율 17~19%로 세계 3위, 전체 웨이퍼 매출 기준으로는 10~13%로 세계 4~5위다.
특히 리밸런싱을 본격화했던 2024년과는 달리 그룹 내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최근 실적 개선으로 확대된 재무 여력을 통해 SK실트론을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순이익 40조 원을 기록했으며, 같은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1조 원이다. 단기금융상품과 단기투자자산까지 포함하면 보유 유동성 자산은 약 54조 3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경제적 권리를 가진 SK실트론 지분 29.4%의 현금화가 SK(주) 지배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산분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거론돼왔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거론된 기업가치 약 5조 원을 기준으로 순차입금을 제외하면, 최 회장 측 지분 29.4%의 단순 지분가치는 약 7000억~76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취득 원금 2535억 원과 누적 금융비용, 세금 등을 정산하면 실제 확보액은 이보다 줄어들 수 있다.
SK실트론을 매각하면 SK(주)는 매각대금을 확보해 차입금 축소 등 리밸런싱에 활용할 수 있고, 최 회장 측 지분도 현금화할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라 성장 가능성이 부각된 소재 기업을 그룹 밖으로 넘기게 된다.
반대로 SK실트론을 그룹 내에 유지하면 반도체 소재 사업과 SK하이닉스의 공급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최 회장 측 지분 처리와 재산분할 재원 마련 문제는 남는다. SK(주) 지분 매각은 최 회장의 지분율과 의결권 영향력이 낮아질 수 있고, 주식담보대출 확대는 이자 부담과 추가 담보 제공 위험을 키운다. SK하이닉스 등 계열사가 최 회장 측 지분을 인수하면 계열사 자금이 총수 개인 자산의 현금화에 쓰였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룹의 경영 판단과 최 회장의 개인 재산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SK실트론 매각은 단기적으로 현금 유입을 통한 그룹 리밸런싱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반도체 소재 기업을 포기하는 것은 장기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기업 의사결정은 최 회장의 재산분할 재원 마련 등 개인 문제와 명확히 분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로, 이사회 중심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인 가치 평가를 거쳐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