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빅딜? 박삼구는 의지 활활
신세계그룹이 금호산업 인수의향서 제출 하루 만에 철회하며, 이번 인수전에서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왼쪽)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금호아시아나 본관. 이종현 기자
지난달 26일 신세계그룹은 금호산업 지분 인수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수의향서를 25일 제출했으나, 본 입찰 참여 여부 등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27일 “산업은행 측에 금호산업 인수의향서 철회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라이벌 롯데그룹의 참여를 견제하기 위해 인수 의향서를 냈다가 롯데 측 불참을 확인하고 의사를 번복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광주신세계는 금호산업의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100% 지분을 가진 금호터미널 소유 부지를 전세로 임대했다. 만약 롯데그룹이 금호산업을 인수한다면 광주신세계는 호남의 전략거점을 롯데백화점에 내줘야 한다.
물론 롯데 때문이 아니더라도 신세계가 국적항공사에 욕심낼 여지는 있다. 유통업이 주력이고 호텔, 면세점 등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항공업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또 이마트가 가진 삼성생명 주식 1476만 3000주(7.38%) 시가가 약 1조 5000억 원이다. 신세계 백화점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738만 1000주(3.7%)도 7500억 원 상당이다. 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광주신세계가 금호터미널에 낸 전세보증금 5000억 원을 회수할 수 있다.
부담스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우선 신세계와 박삼구 회장의 관계가 애매하다. 박 회장의 여동생인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 부인이었던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의 어머니다. 임 상무의 외삼촌이 박 회장이다. 최근 임 상무는 배우 이정재 씨와 열애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 매끄러운 사이는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입장에서 오촌조카인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외갓집을 끝장낼 수도 있는 딜에 참여하기가 껄끄러울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딜은 박삼구 회장으로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승부다. 범 삼성가로 분류되는 신세계가 굳이 이번 딜에 뛰어들어 괜한 오해를 살 필요도 없다.
이번 딜은 인수참여자들이 인수희망가를 써내면 채권단은 가장 높은 가격을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 회장에게 제시해야 한다. 박 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 값에 채권단의 금호산업 지분을 인수하고,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고가를 써낸 인수참여자에 금호산업을 넘기게 된다.
당초 시장의 관측으로는 채권단 지분 57%의 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현재 시가총액인 약 1조 원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모든 걸 걸고 있고 우선매수권까지 가진 박 회장을 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생명 주식도 현금화하려 해도 팔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금호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박 회장 입장에서 이번 딜은 경제적 목숨이 걸렸다. 이기면 재벌 회장에 복귀할 수 있지만, 지면 금호타이어 대주주 지위밖에 남지 않는다. 다른 참여자들이 어떤 금액을 써 내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박 회장이 끌어들일 수 있는 자금은 보유현금 2000억 원 정도에다 금호타이어까지 동원하면 1조 원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플러스 알파(α)를 보탤 재무적투자자(FI)가 있을 수 있다.
현재 금호산업 시가총액은 약 1조 원이다.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율은 30%다. 이번 딜의 매물인 금호산업 지분이 시가로는 5000억~6000억 원 정도지만,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조 원이 훌쩍 넘을 수 있다.
게다가 국적항공사는 매력적인 매물이 분명하지만 수익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유가 변동에 취약하고, 환율 변동에도 민감하다. 각종 사고 위험에 따른 기업의 평판리스크도 커진다. 박 회장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써내야 할 부담도 크다.
반면 신세계 외에 의향서를 낸 호반건설, IBK펀드, 자베즈파트너스 등 사모투자펀드(PEF)들은 완주할 가능성이 높다. 호반건설은 최대 1조 원 정도의 자금은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딜만 성공하면 일약 재계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
사모펀드들도 국적항공사 인수에 성공한다면 이를 다시 재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다소 불리할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차입을 할 수 있지만,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적항공사는 경영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껏 달아오르던 금호산업 인수전이 신세계의 철회로 분위기가 급반전하면서 관련주의 움직임도 커졌다. 최근 주가가 급등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한 영업가치는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의 순자산가치는 3009억 원,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5235억 원과 398억 원이다. 부진한 건설업황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실적이 크게 나아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순자산가치는 1조 1191억 원,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5조 8362억 원과 981억 원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순자산가치의 약 1.5배다.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4배가 더 많은 대한항공보다 높다. 대한항공의 시가총액은 순자산가치의 1.3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최근 M&A 재료로 출렁이고 있지만, 최종적인 승자가 가려지면 경영권 프리미엄보다는 본업의 수익성에 기반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