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 장관은 최근 연기금 발언 등으로 ‘할 말은 하는 장관’이라는 이미지를 굳혔지만 친노 세력과 당권파의 견제 또한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 ||
특히 이번 당권경쟁 과정에선 여러 계파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여진다.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의 직접 출마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걸출한 스타가 없다는 점이 각 계파 간 협력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특히 아직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친노 세력’(노무현 대통령 측근 세력)과 당권파로 대변되는 ‘정동영계’ 세력 간의 연대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친노 세력과 정동영계의 연대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바로 여권 내 재야세력의 움직임 때문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해찬 총리, 장영달 의원이 주축 멤버인 재야출신 모임 ‘국민정치연구회’는 35명 회원을 중심으로 당내 세력 넓히기에 한창이다. 특히 얼마전 터져 나온 김근태 장관의 연기금 발언은 이들의 입지를 더욱 넓혀주었다는 지적이다.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김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계급장 발언’에 이은 이번 파문은 김 장관에게 ‘할 말은 하는 장관’이란 이미지를 심어줬으며 이는 곧 여권 내 재야세력의 보폭 넓히기를 용이하게 해줬다는 지적이다.
친노 계열의 한 인사는 “김 장관의 이번 발언으로 입지가 넓어진 당내 ‘김근태계’ 세력은 이제 더 이상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야 자신들의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이들이 당권을 잡게 되면 여권 지도부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보좌하기보다는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적절히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라 전망했다. 김근태계가 당권을 거머쥘 경우 노 대통령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눈치까지 봐야할 처지가 될 것이란 위기감이 친노 세력 내부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김근태계에 대한 우려는 친노 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여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을 행정부에 앉힌 것은 대권수업을 받으라는 뜻인 동시에 여권으로 하여금 조기 대권경쟁 대신 효율적 국정 보좌를 해달라는 뜻이었다”며 김 장관을 향해 “정 장관은 묵묵히 장관 업무만 수행하지 않나”라며 꼬집었다. 전직 장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장관직 업무에 대한 공부에 열중했던 정 장관보다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대권행보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김 장관에 대한 정동영계 내부의 경계심이 위기감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신기남 전 의장의 당의장 출마 움직임과 천정배 원내대표의 당의장 출마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면서 당권파 내부의 분열 조짐도 엿보이고 있다. 지금껏 여권 내 가장 강력한 파벌로 인식된 당권파의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는 상황은 정동영계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정황 탓인지 여권 내부에선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 세력과 정동영계가 연대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친노 세력과 정동영계가 합세해서 관리형 당 의장을 낼 경우 노 대통령의 국정보좌에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정동영계 역시 친노 세력과 손잡고 당의장을 선출하게 될 경우 외부적으로는 김근태계에 대한 확실한 견제가 될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균열 위기에서 재결속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친노 세력의 입장에선 당권 경쟁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부담감이 있다. 이광재 서갑원 의원 같은 노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전당대회에 직접 뛰어들게 되면 자칫 정치권 불개입을 선언했던 노 대통령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에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것은 정 장관측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치열하게 논쟁을 벌여온 김 장관측과는 달리 정 장관측은 지금껏 ‘공부하는 장관’이미지를 보여왔다. 당권경쟁에 휘말릴 경우 ‘장관직 업무에 충실했다’고 각인된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질 수 있다.
문희상 김혁규 한명숙 의원이 강력한 당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점은 ‘친노 세력-정동영계’의 협력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모두 노 대통령에 적극 협력해온 인물들이다. 김근태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동영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점도 눈에 띈다. 이들은 당의장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거론할 때가 아니다’며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여권에서는 이 세 사람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친노 계열의 한 인사는 “지금 정동영계와 구체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후보 선택 과정에서 친노 계열과 정동영계가 선호하는 후보는 일치하게 될 것이며 이는 김근태계가 선호하는 인물과의 경쟁 구도로 발전할 것”이라며 사실상 연대 가능성을 인정했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굳이 겉으로 드러나게 (친노 세력과) 손잡지 않더라도 선거과정에서 비슷한 후보로의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 전망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의원 한 사람에게 2~3명에 투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협력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당의장뿐 아니라 당 지도부를 친노 세력과 정동영계가 독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지금 후보 난립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계파간 협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 숫자도 정리될 것”이라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