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경은 내게 사과하라” 무죄석방 피의자 난동
지난 8월 1일 잠실 롯데호텔의 한 객실에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청소 용역으로 근무하던 A 씨가 부상당한 것을 놓고 호텔 측은 자신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이날 사고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피해자 A 씨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8월 1일 오전 9시경. 잠실에 위치한 롯데호텔에 흉기를 든 한 남성이 16층 객실로 침입했다. 열려있던 객실로 침입한 이 남성은 방을 청소하던 직원 A 씨(43·여)를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A 씨는 이 과정에서 오른손을 흉기로 찔려 깊은 상처를 입었고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이후 성폭행을 당할 것을 우려한 A 씨가 극심하게 반항하자 범인은 “해칠 목적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이 인질극을 벌이게 된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범인 한 아무개 씨(50)의 주장은 자신이 억울하게 방화사건 범인으로 몰려 구속수사를 당했는데 수사한 경찰과 검찰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 인질극을 벌이게 됐다는 것이었다.
한 씨는 2007년 6월 발생한 방화사건 용의자로 구속된 인물로 알려졌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나자 수사진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꾸몄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씨는 프론트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객실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음을 밝혔다.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려 구속 수사까지 당했는데 정작 사건을 담당한 사람들은 사과조차 없었다”며 “사건 수사 경찰과 검사에게 사과를 받으면 인질은 풀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송파경찰서에서 특공대가 출동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졌고 한 씨의 인질극은 세 시간가량 이어졌다.
결국 한 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과 검사가 사과 전화를 하고 나서야 A 씨는 객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체포돼 경찰서로 연행된 한 씨는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A 씨는 당시의 충격으로 여전히 심각한 심신장애를 겪고 있다. 몸을 다친 것보다는 정신적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A 씨에게 내린 진단만 해도 정신적 외상 후 불면, 불안, 과각성, 호흡곤란, 이명, 재회상, 집중곤란 등 여러 개에 이를 정도다.
가족들이 입고 있는 고통도 심각한 수준이다. “17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게 됐다”는 남편 B 씨는 “아내의 일이 발생한 이후 너무 분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술로 겨우 잠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들도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과격한 말을 자주하고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등 조울증 증세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롯데호텔 측에서는 A 씨가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하청회사에 전적으로 떠밀고 있다. 피해자를 고용한 하청업체가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호텔 측의 입장이다.
A 씨의 가족들은 롯데호텔 측의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B 씨는 “길 가던 행인이 호텔에 들어가 사고를 당해도 호텔 측에서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며 “하물며 (하청업체 고용자라 하더라도) 건물에서 일을 하다 다쳤는데 자신들 책임이 전무하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울분을 토했다.
가족들은 또 비록 A 씨가 하청업체에 고용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평상시 업무지시를 모두 롯데호텔 직원으로부터 받아왔으며 당시 상황에 대한 보안 소홀의 책임이 롯데호텔 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호텔 측에서는 여전히 “피해보상의 책임은 하청업체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롯데호텔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자문을 구한 결과) 우리 측에서 법적으로 보상의무가 전혀 없다. 병원비의 경우 하청업체에서 이미 산재처리가 된 상황이다”고 밝혔다. 또 A 씨 가족이 주장한 보안소홀 부분에 대해서는 “호텔이 검색, 검문을 하는 장소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하청업체 측에서도 현재 발생한 산재 치료비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A 씨의 가족들은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조차 전적으로 자비로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육체적으로 다친 것은 산재로 처리가 됐지만 앞으로 더욱 많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부분은 A 씨가 직접 부담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보상을 떠나서 A 씨의 가족들을 무엇보다 힘들게 하는 부분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A 씨의 남편 B 씨는 “전화를 하자 그제서야 병원에 한번 와보더라”며 “호텔과 하청업체의 이런 태도에 부인이 또 다시 상처를 입을까봐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B 씨는 “부인은 ‘성실 근무자’로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오던 사람이다. 애사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 사람인데 범인도, 회사도, 그 누구도 아내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보상을 떠나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라도 받았다면 아내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