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지르고’ 빚으로 ‘돌려막기’
대출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부채에 무감각하다. ‘빚도 자산이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추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빚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미 대출중독에 빠진 셈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정 아무개 씨(47)와 이 아무개 씨(여·47) 부부는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한다. 남편 정 씨의 월급은 월 500만 원선이다. 정 씨 부부가 살았던 예전 아파트는 담보대출금이 2억 5000만 원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정 씨 부부는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정 씨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중도금과 잔금으로 4억 7000만 원을 추가 대출받았다. 월 100만 원 수준이던 이자는 250만 원으로 급증했다. 두 자녀의 사교육비도 월 220만 원씩 나가는 상황. 이미 남편의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됐지만 분양받은 아파트는 물론 자동차, 사교육비, 쇼핑, 여행 등 그동안 유지해 왔던 라이프스타일을 포기하기는 힘들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던 정 씨 부부는 결국 제2금융권 대출까지 생각하게 됐다.
이렇듯 소비를 줄이지 않고 빚내는 것에 익숙해지고 ‘둔감해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지 없이 현재의 소비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마이너스 통장이나 현금대출, 자동차 할부 등의 빚이 있음에도 다른 자산을 정리하거나 쇼핑, 여행, 취미 등 소비성 지출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면 대출중독을 의심해 봐야 한다.
대출중독 초기단계가 지나면 카드할부나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을 개설해 소비규모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단계가 온다. 이미 카드빚을 갚느라 신용대출을 하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지만 쇼핑이나 여행, 취미생활 등의 소비성 대출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이미 부채에 둔감해진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저축은 못하더라도 이자를 낼 수입이 있으면 계속 부채를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부채는 버틸 때까지는 버티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대출이 늘어나면서 대출이자를 막기 위한 또 다른 대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출중독 중간단계까지 넘어서면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찾게 된다. 자기 스스로 대안을 찾다가 빚의 규모를 알고 나서는 빚을 내서 이자를 갚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앞서의 고 연구위원은 “고금리 대출은 짧은 기간 안에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대출 할 때는 버틸 만했는데’ ‘초반에는 대출이 재정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대출을 지속하다 이 단계에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출중독 초기단계부터 상담을 받는 것이 좋지만 부채 문제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대출중독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주변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자산을 정리해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주변에서 이 정도 삶은 다 유지하는데 우리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 자산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명품이나 해외여행 등 지금껏 누려왔던 것을 포기하지 못해 대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고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사거나 누릴 때 예전 같은 경우는 돈을 모아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가치관이 팽배하다. 주택담보대출이 저금리인데다 소비성 대출이 늘면서 가계빚 문제로 상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중독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채에 무감각하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마약에 빠져도 마약을 끊을 수 없듯, 빚에 빠지면 그 빚을 끊을 수 없게 된다. ‘빚도 자산이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추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빚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리고 채무를 갚을 생각이 없다면, 이미 악성의 대출중독에 빠진 셈이다.
그래서 기존의 소비를 줄이고 자산을 정리해 빚을 청산하는 것에 망설임을 보이는 것도 대출중독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의 특징이다. 소비를 줄이고 자산을 줄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답인 것을 알고 있지만 행동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 연구위원은 “부채 문제로 상담을 오시는 분에게 지금 타고 있는 자동차가 중요한지 자녀분이 소중한지 물어본다. 이 말을 달리하면 현재의 삶은 자동차이고 미래의 삶은 자녀이다. 소비는 현재의 삶이고 저축은 미래의 삶이다. 미래도 언젠가는 현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5년 현재 총가계부채는 1100조원이고, 국민 1인당 가계부채는 2150만원이다. 빚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다.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예방·해결책은 무엇 소득 20% 내에서 빌려라 대출도 소비의 일종이다. 따라서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현명하게 소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빚이 있다면 효과적으로 갚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은 고정 소득을 아껴서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소득을 아껴서 부채를 없애기는 쉽지 않다. 저축과 생활비, 원금과 이자를 제외한 금액에서 아낄 수 있는 금액은 많아야 10~20%선이다. 하지만 1억 원의 원금을 5%의 이율로 20년간 이자만 상환하면 이자금액이 원금과 동일한 1억 원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빚의 상환은 ‘2015년 원금 700만 원 상환’ 등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계획도 필요하다. 현금서비스, 마이너스 통장, 자동차 할부 등은 가장 먼저 상환할 필요가 있는 빚이다. 소득을 아껴도 이러한 부채를 우선 줄일 수 없다면 자산을 조정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재무설계연구소 고인구 연구위원은 “보통 자산을 정리할 때 여자의 경우는 집을 포기하지 못하고, 남자의 경우는 차를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의 주거비와 자동차 유지비 등은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선에서 자산을 정리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빚 상환을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경우는 하루라도 먼저 전문가나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조 대표는 “빚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소비를 줄이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하다면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 못지않은 빚 중독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용기를 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 연구위원도 “자산과 부채의 합이 0인 경우 부채가 더 커진 상태다. 대출중독의 초기부터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기관의 도움이나 제도를 활용하는 단계가 오기도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제도나 법원에서 진행하는 개인회생이나 파산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 |
‘빚 때문에…’ 가정불화 백태 ‘가족 카드값 내주는 데 지쳤어요’ 결혼 7년차 주부 박 아무개 씨(여·35)는 경제관념이 없는 남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편의 월급은 19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캠핑과 낚시가 취미인 남편은 취미생활을 위해 2000만 원에 가까운 대출금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다. 카드가 연체되고 대출을 늘리는 상황이지만 최근 남편은 캠핑용 RV(Recreational Vehicle) 자동차를 사고 싶다며 아내에게 통보했다. 박 씨는 가정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도 ‘빚도 자산이다’라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최근 부부문제 상담소를 찾았다. ‘빚에 대한 개념’ 차이 때문에 가정불화를 겪는 가정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 아무개 씨(31)는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다. 3년 전 동생은 200만~300만 원 단위로 제2금융권 4곳에 대출이 있어 빚 독촉에 시달린다며 1000만 원을 갚아달라고 요청했다. 박 씨는 동생이 걱정되는 마음에 자신의 자동차를 팔아 1000만 원을 대신 갚아줬다. 빚 독촉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고 말한 동생은 일주일 후에 또다시 300만 원을 대출했다. 알고 보니 동생에게는 3500만 원의 빚이 더 남아있었다. 이자를 갚고 남은 돈을 쓰기 위해 또다시 대출을 한 것이다. 동생은 자신의 신용등급에서 빌릴 대로 다 빌려 더 이상 대출이 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돈 3000만~4000만 원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긴 싫다”며 개인회생신청도 하지 않고 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경제관념이 없는 배우자나 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데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수입에 상관없이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카드가 연체되고 대출을 끌어 쓰는 상황이 온다”며 “실제로 ‘배우자나 가족의 카드 값 내주는 것에 지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경제관념이 없어서 벌어진 사건은 본인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하거나 용돈을 줄이는 등 부채를 갚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관념이 없는 배우자에게는 돈에 대한 소중함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숙기 원장은 “자신의 수입 내에서 감당할 만한 수준의 소비를 하거나 용돈을 모아서 취미생활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서로 인정해주는 것도 가정의 화목을 위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