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옥 vs 김용판’ 무궁화 대결 성사되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나는 왜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는가>라는 제목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입구는 김용판 전 청장과 인사를 나누기 위한 인파로 북적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전·현직 경찰 간부 출신 등 공직생활로 알게 된 이들과 지역 인사들 400여 명이 참석했다. 반면 정치권 인사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과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 정도만이 축사자로 나섰다.
김 전 청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축소·은폐 사실이 없다”면서 “검찰조사든 국정조사든 처음부터 답을 정한 느낌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이듬해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 선서를 거부한 이유에 관해서는 “선서를 할 경우 위증죄 혐의로 또 재판을 받았을 것이기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고 재론했다.
김 전 청장은 이번에 펴낸 책에서 “한 경찰관의 편견에 가득 찬 허무맹랑한 폭로에 의해 (중략) 국가를 일대 혼란에 빠트렸다”라며 반격하기도 했다. 책 속에서 시종일관 ‘A’로 표현된 이는 다름 아닌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던 그는 내부 고발자로 활약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국회에 입성했다.
김 전 청장은 책 속에서 “내가 외압 전화를 걸었다는 A의 주장은 ‘소가 웃고도 남을 일’”이라며 “당시 ‘신중하고 당당하게 잘하라’고 격려 전화를 했을 뿐인데 그게 외압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역사의 심판을 누가 받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청장이 지난 1월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두 달여 만에 공개 행보에 나선 것을 놓고 내년 총선을 위한 포석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 김 전 청장은 올 1월 달서구 진천동 한 상가건물 2층에 ‘달구벌문화연구소’를 열었고, 인근의 한 아파트에 전입신고도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출판기념회 당시 총선 출마 의사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알아서 쓰세요”라는 묘한 답을 했지만 출마 자체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여당에서는 김 전 청장의 공천 가능성을 그다지 높게 보고 있지 않다. 새누리당 한 고참 당직자는 “책 출간은 본인의 개인 활동일 뿐, 중앙당과 교감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본인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것과 총선은 다르다. 김 전 청장이 억울하다고 지역구를 비워 줄 현역 의원이 있겠는가. 박영준 전 차관도 결국 공천 못 받고 무소속 출마 뒤 낙마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김 전 청장이 출마가 예상되는 대구 달서을은 같은 경찰 간부 출신인 윤재옥 의원이 버티는 곳이다. 경찰대 1기인 윤 의원은 국회 입성 전까지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낸 인물로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구 달서경찰서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이 공천장을 내밀 경우 두 경찰 출신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셈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김 전 청장의 총선 출마 시도 자체가 불편한 눈치다. 야권에서는 지난 대선 때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정국에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였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지난 2012년 대선 3일 전인 12월 16일 밤 11시, 수서경찰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 여직원 컴퓨터에서 문재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지지 게시글 및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발표하면서 여론이 야권에 불리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이후 검찰에서 국정원 여직원이 여러 개의 ID를 번갈아 사용하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정치 관련 글을 남긴 사실을 밝혀내면서 김 전 청장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지난 1월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권은희 의원 역시 “중간수사결과 발표와 수사결과가 명백히 다르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사법부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판단하는지 답답하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책에서 지난 23개월간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의 검찰의 무리한 기소 및 야권의 편견에 관한 질타를 쏟아냈지만 이후 긴박하게 진행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관한 소회를 밝히지는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김 전 청장은 박 대통령 당선의 진정한 숨은 공신이다. 숱한 의혹에도 차기 총선 출마까지 감행한 것은 정부여당의 누군가와 교감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김용판 사건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