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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현씨 | ||
그러나 ‘김수현’이란 이름 하나로 자신만만하게 시작된 <내 사랑…>은 방영 초기 불과 10% 안팎을 오가는 저조한 시청률로 관계자들을 당황시켰다. 첫 방영 시기가 같은 시간대 라이벌 방송사의 드라마가 절정에 이르른 때인지라 시청자를 한번에 끌어모으기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은 예상보다 더 저조했고 그나마 봤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하였다. 이런 상황이 적어도 석달이나 이어졌다. ‘이제 김수현 시대는 갔다’란 성급한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날 무렵부터 <내 사랑…>은 기지개를 켰다. 시청률이 한 주에 6~7%포인트나 상승했다. 라이벌 드라마도 때마침 식상해질 무렵, <내사랑 누굴까> 인물들의 갈등구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시청자들이 김수현에게 돌아선 것이다.
본래 김수현의 작품은 중반 이후 저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자들이‘김수현 시대가 갔다’고 호들갑을 떤 것은 <내 사랑 누굴까>가 처음 일도 아니다. <불꽃>도 초반 시청률이 10%대였고,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던 <청춘의 덫>도 그랬으며, 더 거슬러가서 <사랑하니까> <작별> 등도 초반에는 ‘김수현 약발 다 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끝날 무렵에는 3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김수현이 쓴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수돗물 사용량이 뚝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많은 주부들이 그 시간엔 부엌 일을 멈추고 TV 앞에 앉았다.
김수현 드라마가 발산하는 마력은 어떤 것일까. 가장 큰 특징은 ‘기관총을 쏴대는 것처럼 빠른 대사’다. ‘다다다다…’ 정신없이 쏘아대는 후련하고도 현란한 대사가 시청자들을 압도한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워낙 대사가 많아 대본이 다른 드라마 대본보다 두배는 된다 할 정도로 두껍다. 더구나 그 많은 대사들 중 버리고 뺄만한 것도 거의 없다.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면서 감칠 맛 나는 표현이 구구절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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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김수현씨의 작품이라는 ‘보증수표’를 받고 시작한 드라마 <내 사랑 누굴까>가 초반 부진을 딛고 시청률이 올라가면서 ‘역시, 김수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은 캐릭터가 분명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다양한 인물 군상과 그들의 성격이 빚는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각기 다른 캐릭터들에 시청자 스스로를 대입해서 비교하는 재미도 김수현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다.
<내 사랑 누굴까>의 이승연에게서는 완전한 남자를 꿈꾸는 약간의 허영심을 보면서도 밉지 않고,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집은 부자지만 자신은 가난해 매일 한탄하는 주부 김혜자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낀 주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훌륭해도 대사만으로 드라마 한편이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 김수현의 진짜 강점은 대사 뿐 아니라 치밀한 구성, 시대와 심리를 꿰뚫는 상황 설정에 있다. 그의 드라마는 관객 개개인에게 ‘이 상황에서 나라면, 혹은 그라면’이란 가정을 하면서 실제 자기 일인양 설정을 곱씹어보게 한다.
또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주연 조연이 따로 없다. 주연과 그를 돋보이게 하는 조연, 이런 형식이 아니라 많은 주연들을 퍼뜨려 놓으면서 극을 끌어나가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놓는 방식이다. 누구 하나만 돋보이게 하기 어렵도록 원숙한 연기자들이 총출동하는 자리라 그런 까닭도 있을 것이다.
김수현은 자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어떤 작가가 자기 작품에 애착을 갖지 않을까만, 김수현의 경우 대사의 토씨 하나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저 대사를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고저장단박자까지 맞춰야 대사의 뉘앙스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이 점에서 연기자들에게 엄격하다. 대사 뿐 아니라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써서 체크하기 때문에 주요인물에게 주는 대본은 각자 대사 한 줄마다 칭찬과 비판, 주의점을 써서 주기도 한다.
김수현은 무엇보다 드라마를 안다. 시청자들이 왜 드라마를 보고 싶어하는지도 안다. ‘드라마는 심심해서 보는 것’이란 그의 지론이 맞다는 사실은 그가 만든 드라마에 대중들이 열렬한 호응을 보내는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