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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과정에서 유출됐던 영화 <거짓말>. | ||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자 시사회장에서는 입이 딱 벌어질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이너리티…>의 배급사인 20세기폭스사와 홍보사 젊은기획의 직원들이 총출동해, 상영관 입구에서 기자들의 가방을 하나하나 열어본 것. 캠코더나 사진기 따위의 물건 반입을 막아 영화 사전누출을 철저히 예방하겠다는 취지였다.
재미있는 점은 며칠 전에도 사실 똑같은 진풍경이 연출됐다는 거다. 바로 <스타워즈: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시사회장에서였다. 이날의 ‘검문’은 도중에 기자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중단됐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끔하게 항의를 하는 바람에 배급사와 홍보사 직원이 얼굴을 붉히며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에피소드…>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성황을 이룬 <마이너리티…> 때는 아무런 반항도, 사과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이유가 뭘까? 그만큼 불법복제가 극성을 이뤄 영화사로서도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기분은 나쁘지만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 요즘 기자 시사회에는 기자보다도 이런 저런 관계자나 팬들이 더 몰리는 판국인지라 몰래 캠코더를 들고와 영화를 복제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 <스타워즈>는 미국 현지에서 개봉되기 1주일 전, 불법 복제된 영화가 인터넷에 공개돼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2종의 해적판이 인터넷상을 마구 헤집고 다닌 바람에 제작사가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
당시 제작사는 “사전유출로 인한 개봉 전 관람 인구가 1백만 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그간 많은 유명 외화와 한국영화가 시사회에서 스크린을 찍는 방법으로 사전 유출돼 불법 인터넷 영화 사이트를 통해 유포돼 왔다. 간편하고 성능 좋은 디지털 캠코더와 강력한 인터넷 시스템의 등장으로 손쉽게 저질러질 수 있는 신종 범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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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상영 전 밀수 복제품이 사전유출돼 흥행에 참패한 <감각의 제국>(위)과 <아이즈 와이드 셧>. | ||
너무 유명해서 홍보에 그다지 목매지 않아도 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들은 그래서 ‘소수정예 시사회’를 연다. 몇몇 유력매체 기자들만 자사 상영실로 초청해 개봉 전 시사 인원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 최근 <맨인블랙2>가 그랬다. 디즈니는 초대장을 먼저 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매체별로 제한된 초대장을 돌려 초대장 없이 온 사람은 절대 입장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열 사람이 한 도둑 막기 어렵다’는 말처럼 이런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완벽히 개선되는 기미가 아니다. 외화의 경우 현지에서 불법 복제한 것이 밀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세계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도 영화 마니아들에게 밀수품이 사전 유포돼 흥행성적이 실망스러웠다. 큐브릭 감독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난교(亂交) 장면을 작품에 삽입했다. 이것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지를 받아 두차례나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고 1년간 국내 상영이 금지됐다.
상영이 유보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진 사이에 일본에서 먼저 상영된 필름의 비디오테이프가 일본어 자막이 씌어진 채 국내로 흘러 들어와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한국어 자막이 없어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관심있는 싶은 사람은 이미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다 본 상태였다.
같은 해 개봉된 <감각의 제국>(오시마 감독)도 비디오테이프가 먼저 국내로 흘러 들어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포르노물처럼 은밀히 유포되는 바람에 서울 관객 10만 명을 밑도는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뒀다. 남녀 주인공이 실제 성행위를 하고 여주인공이 남자의 성기를 잘라내는 등 충격적인 묘사를 담은 영화인데 국내 극장 상영분은 성기노출 장면 등이 삭제된 데 반해 불법복제물은 원판 그대로여서 오히려 더 인기를 모았다.
국내 영화로는 <거짓말>이 대표적인 피해사례. 여고생과 중년남자의 섹스묘사가 적나라해 장안에 화제를 뿌렸던 <거짓말>은 아예 편집과정에서 사전 유출되는 바람에 흥행에 쓴맛을 봤다.
우습게도 개봉 이후에도 계속 비디오테이프가 더 인기를 끌었는데 이유는 무삭제본이라는 점에 있었다. 성기 노출은 물론 공항 화장실에서의 섹스, 행위중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몽둥이로 때리는 변태적인 장면, 오럴섹스 등이 가위질당하기 전 모습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 결국 볼만한 사람은 모두 본 탓에 <거짓말>은 크게 히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서울관객 3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극장 입구에 고가의 금속 탐지기라도 설치하고 싶다”며 애타는 심정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