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 같은 식장 ‘짬밥’ 같은 식사 할 맛 나겠수?
여성가족부가 ‘작은결혼식’을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대부분의 공공기관 결혼식은 열악한 시설과 서비스 등으로 외면받고 있다. 드라마 <원더풀라이프>의 한 장면.
내 힘으로 준비하는 소박한 결혼식을 준비하던 예비신부 윤 아무개 씨(27)는 10월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공공기관 결혼식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서 개설한 작은결혼정보센터(www.weddinginc.org) 사이트를 보고 가까운 공공기관에 결혼식을 문의했지만 “지금은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거주하는 곳의 구민회관을 알아봤지만 1980년대를 방불케 하는 웨딩홀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1순위로 꼽았던 시민청과 국립중앙도서관은 이미 연말까지 예약이 끝난 상태다. 윤 씨는 “사실 평범하게 예식장에서 하는 게 가장 편하고 그나마 저렴하더라. 싸구려 조화 장식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공공기관 결혼식장을 보니 그냥 남들과 비슷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2012년부터 허례허식이 만연한 결혼문화를 바꾸기 위해 나섰다. <조선일보>와 손잡고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을 이어가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은 따라가지 못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황인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가부는 2억 1700만 원을 작은결혼식 사업 홍보비용으로 썼다. 하지만 수억 원의 세금이 무색하다.
여가부에서 운영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정보센터)는 지난해부터 업데이트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관을 문의하는 게시글에도 답변이 달리지 않았고, 이용 가능한 시설도 업데이트한 지 오래다. 이용가능하다고 올라와 있는 곳도 전화로는 “불가능하다”는 답을 주기도 했다. 정보센터 관계자는 “올해는 4월이나 5월쯤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해마다 계약을 다시 하지만 이용 가능한 시설은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올라와 있는 정보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이트에 올라온 기관에 확인한 결과 결혼식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곳도 있었다. 서울시와 경기도 내 이용 가능한 예식장 10곳 중 두 곳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서대문구청의 담당자는 “수년 전 저소득층 합동결혼식을 올리느라 한 번 장소를 대여해준 적이 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장소 대관은 가능하지만 결혼용품이 전혀 없어 신청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조달청의 담당자는 “우리 기관에서 작은 결혼식을 진행하느냐”고 되물으며 “그런 프로그램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곳 중에도 1년에 10건도 받지 못하고 있는 곳이 수두룩했다.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의 경우 기관 개방을 한 2012년부터 단 6건의 커플만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년에 단 두 건인 셈이다.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문의는 꾸준히 들어오는데 계약이 성사되는 비율은 10분의 1도 안 된다”며 “아무래도 결혼용품이 거의 준비돼 있지 않다보니 생기는 일 같다”고 설명했다.
시설이 제대로 갖춰있지 않다보니 작은결혼식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꽃장식, 단상, 음향, 식사를 업체에 맡기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된다. 대관료는 무료지만 내부 장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150만~200만 원 수준이다. 물론 식대 역시 별도다. 공공기관 결혼식을 알아봤다는 예비신부 A 씨는 “결혼 비수기에는 강남, 압구정에 있는 예식장도 대관료가 없더라. 외부업체에 맡기는 비용과 준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일반 예식장을 택하는 게 낫다”며 한숨지었다. 경기도에 있는 한 공공기관 예식에 참석했었다는 B 씨는 “식판에 밥 먹는 느낌이었다. 축의금 내고 홀대받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상했다”며 “긴 대관시간을 제외하면 시설, 식사, 비용 어디에서도 장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당부서인 여가부 가족정책과 김중열 과장은 “현재 작은결혼식 사업에 대해 전체적인 개편을 하려 계획수립을 하고 있는 단계다”고 해명했다. 작은결혼식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들인 비용에 비해 사업 추진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김 과장은 “사업 활성화를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에도 다양한 지원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시민사회, 종교계와 손잡고 작은결혼식의 의미를 살린 내실 있는 사업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작은결혼식 모범사례는? 그곳은 육백이면 되더라 ‘개점휴업’ 상태인 공공기관들과 달리, 인기가 높아 날짜를 잡기 힘든 결혼식장도 있다. 양재시민의숲과 국립중앙도서관, (서울)시민청 세 곳이다. 양재시민의숲 담당자는 “매년 1월 1일에 현장접수만 받는다. 전날 새벽부터 텐트 치고 기다리는 커플도 있다. 야외결혼식이다 보니 한여름과 한겨울을 빼면 그날 예약이 다 끝난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역시 지난해까지 비슷한 진풍경이 펼쳐졌지만 올해부터 인터넷 예약으로 제도를 바꿨다. 서울시민청의 결혼식장 대관 서비스는 ‘작은 결혼식’ 취지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곳은 아름다운 장소에서 인기요인을 찾을 수 있다면, 시민청은 취지를 잘 살린 ‘모범사례’로 꼽힌다. 시민청 결혼식은 상·하반기로 나눠 신청을 받으며, 이미 올해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다. 결혼 계획서를 작성하고,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예비부부교육을 들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지만 경쟁률은 2:1에 달한다. 박민호 시민소통담당관은 “식대, 드레스, 메이크업, 사진 등 모두 합쳐 600만 원 수준에서 결혼식을 치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시민청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에 대해 박 담당관은 “작은결혼식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의 협력업체가 있어 결혼준비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또 부부교육에서 ‘결혼선배’들의 사례를 듣고 감동받아 신청하는 커플이 많다”고 분석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