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없으니 채권단 돈으로’ 이건 아닌듯
금호산업 채권단의 컨소시엄 참여 반대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금호고속 인수에 제동이 걸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8일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산업이 금호고속 인수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산업은행·우리은행 등 금호산업 채권단은 18일 서울 여의도동 산업은행에서 ‘채권단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채권단 주장을 간추려 보면 대략 이렇다. 금호산업은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채권단 동의 없이 금호산업에서 자금을 동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호아시아나그룹 마음대로 다른 기업 인수전에 나설 수 없다. 다시 말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산업의 현 대주주인 채권단에 말도 없이 금호산업과 함께 금호고속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9일 금호고속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IBK투자증권-케이스톤 파트너스(IBK펀드)에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제안했다. 즉 금호고속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금호고속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했는데 여기에는 아시아나항공, 금호터미널, 금호고속 우리사주조합과 함께 금호산업이 끼어 있다.
우선 이 부분이 의문이다. 아직 인수하지도 않은 금호산업을 대주주 동의 없이 컨소시엄의 구성원으로 참여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록 박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호산업은 엄연히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현재 매각공고가 나간 이후 호반건설과 사모펀드들의 인수의향서가 접수됐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4월에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금호산업의 대주주는 아직 채권단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컨소시엄에 금호산업을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채권단과 협의하지 않은 게 지적받았는데, 협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호산업 채권단 관계자는 “우선 금호고속 인수와 관련해 금호그룹과 IBK 쪽 협상 결과가 먼저”라며 “금호고속 우선협상대상자로 금호터미널이 선정되면 우리 쪽으로 요청이 다시 들어올 것이며 협의는 그 다음이지만 금호산업은 인수 컨소시엄에서 빠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금호고속 인수 주체인 금호터미널은 컨소시엄을 구성할 제3자로 다른 쪽을 알아봐야 하거나 금호산업이 빠진 3곳으로만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금호고속 매각절차에 돌입하기 전부터 금호아시아나와 IBK펀드 간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질 만큼 신경전이 대단했다. 서로 심기가 불편해 있는 상황에서 금호아시아나는 금호고속을 인수하는 데 금호리조트 지분 48.8%를 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IBK펀드로서는 좋은 제안일 리 없다.
금호산업 채권단에서는 금호산업이 금호고속의 인수 주체는 물론 인수 컨소시엄에서도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협의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만일 금호고속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금호산업이 부담해야 할 자금도 문제기 때문이다. IBK펀드가 금호의 요구대로 금호리조트 지분을 제외하고 금호고속을 매각한다면 금호산업은 인수 대금으로 약 10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금호산업 채권단 관계자는 “매각 절차 중인 회사에서 1000억 원의 자금이 빠져나간다면 매각 작업에 차질이 빚어진다”며 “금호산업은 컨소시엄에서도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산업 채권단이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한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호터미널 컨소시엄이 금호고속 인수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 9일이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그 후 9일이나 지난 후에야 운영위원회를 열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딜(Deal)은 늘 비밀로 진행되는데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했을 당시 컨소시엄 구성원에 대해 알 방법이 없다”면서 “나중에 이를 알고 채권단 내에서 심각하게 논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터미널 컨소시엄이 금호고속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금호산업이 투입해야 할 자금을 채권단에서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재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채권단이 금호산업의 금호터미널 컨소시엄 참여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채권단은 대주주 지위도 함께 갖고 있다. 금호산업이 금호고속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 등 자금 조달 방법을 실시할 경우 대주주이자 채권단이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이 추가로 자금을 투입할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금호산업 채권단이 워낙 강경한 자세로 나오고 있는 탓에 금호아시아나 쪽은 “현재로서는 달리 할 말 없다”며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재계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보니 자금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