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같은 라이벌 아닌…아무 사이 아니라고?
정의화 국회의장(위)이 현안 관련 높은 수위의 발언으로 ‘대망론’에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내 세력이 전무해 정치권에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진 아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연합뉴스
정 의장의 이날 발언을 보면 김 대표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난해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와 친박계에 혼쭐이 난 김 대표는 이후 입을 꾹 닫았다. 올해 다시 개헌론이 촉발되고 있지만 김 대표는 먼발치로 물러나 있다. 논란이 끊이질 않는 김영란법도 국회에서 처리된 사안이지만 정 의장만은 언론 편에 섰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언론인은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언론이 정 의장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발언은 그 어느 정치인보다 속을 후련하게 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슈나 현안에 두루뭉술한 김 대표보다 입법부 수장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정 의장의 발언이 훨씬 세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이를 두고 “정 의장은 김 대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을 장악하다시피 한 김 대표를 유일하게 얕잡아 보는 이가 바로 정 의장”이라고 했다. 의전서열에 있어서도 정 의장은 대통령 다음인 2위이고 여당 대표는 7위다. 또 국회의장은 여야를 모두 아우르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고, 여당 출신이 맡게 되는 국회의장을 두고 여당 대표는 당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강변하게 된다. 둘의 역할이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산 정가에서 둘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라고 평가한다. 좋고 싫고도 없는 남보다 더한 남이라는 얘기다. PK 정치권에 밝은 한 인사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지만 서로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결코 좋았던 적이 없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싫어하고 그런 것도 없다”며 “비슷하게 정치를 시작해 초선, 재선 때 일을 이것저것 다 아는 사이이니 ‘니가 하면 나도 한다’는, 그런 관계에 있다”고 전했다. 18대 국회에서 TK(대구·경북)의 4선이었던 박종근 의원과 이해봉 의원은 교통정리를 하지 못하고 둘 다 국회부의장직에 도전했다 나란히 실패한 바 있다. 정 의장과 김 대표도 그런 사이란 얘기다.
또 과거에 김 대표가 정 의장에게 “그동안 형님이라 말하지 못한 것에 마음에 부담이 컸다”고 말했고 정 의장은 “괜찮다”고 답한 것이 이때 알려지면서 둘의 묵은 감정이 본회의장에서 터진 것 아니냐는 말들도 있었다. 김 대표가 정 의장을 예우하지 않았고 정 의장이 이에 대해 꽁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또 최근 정 의장이 대치정국을 풀고자 여야 중진 원로회의체를 제안하며 연 오찬에서는 김 대표가 불참하면서 정 의장의 초당적 구상이 빛을 보지 못한 바 있다.
그러나 부산 정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가 친박일 때 정 의장은 친이의 대표 격이었다. 하지만 영도 재선거에 김 대표가 나섰을 때 정 의장이 가장 먼저 ‘김무성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현실이 됐다. 정적이나 다름없는 정 의장이 그렇게 도우면서 결과적으로 김 대표가 복귀해 이 자리까지 왔는데 둘이 나쁠 것은 없고 언론이 그렇게 싸움을 붙이고 있다”고 했다. 다른 정가 인사는 “19대 총선 당시 같은 4선의 김 대표는 정 의장이 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낙천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이를 정 의장이 영도 보선에서 갚아줬고 그렇게 둘 사이는 풀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 의장(오른쪽)은 최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회동을 가졌다. 이종현 기자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재획정을 결정하면서 둘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현재 부산에서는 김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가 서구와 함께 인구 하한에 미달한다. 하지만 영도구와 서구를 합할 경우에는 거대 선거구가 돼 버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정 의장의 지역구인 중동구를 중구, 동구로 나눠 영도구와 서구에 붙이면 된다는 ‘솔루션’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묵직한 직위에 있어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고, 둘도 선거구를 두고선 서로 말을 않는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일단 ‘정의화 대망론’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입법부 수장을 거친 대권주자는 역대 없었고 국민정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 의장은 당내 세력이 전무하다는 평가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황우여 전 대표를 이긴 것도 정 의장 편이 많아서라기보다 황우여 우려 여론이 컸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부산 여론도 정 의장의 대망론에 대해선 “본인 생각일 뿐”이라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정 의장과 김 대표의 묘한 겨눔은 흥미진진하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