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 자동차 추격전 끝에 ‘엉 망’이 된 캐딜락CTS. | ||
그냥 아무 차나 시동 걸리는 차를 타라? 잠깐 나가 계시라. ‘매트릭스’가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모든 것에는 주어진 운명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대뜸 제네럴 모터스(GM)에서 올해 새롭게 선보인 신형 캐딜락 모델 ‘캐딜락 CTS’에 올라탄다. 그건, 이미 오래 전에 GM과 <매트릭스>의 제작진이 약속했던, 예정된 일이다.
이때부터 15분 동안 이어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추격전의 주인공은 바로 캐딜락 CTS다. 최대 출력 220마력의 캐딜락 CTS는 요원들의 총알받이로 갖가지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덤프 트럭과 경찰차를 따돌리고 멋지게 제 역할을 해낸다.
이 순간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지배한 ‘시스템의 힘’은, 바로 간접광고의 하나인 ‘PPL’(Product Placement)이다. PPL은 영화의 한두 장면에서 특정 제품을 부각시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흔한 마케팅 기법이다. 사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캐딜락 CTS의 경우처럼 자동차 PPL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흔한 일이다.
지난 여름 개봉됐던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경우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렉서스 미래형’이 선보였었고, <007> 시리즈의 경우 ‘본드카’를 놓고 거의 매 시리즈마다 BMW와 벤츠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한다.
▲ 캐딜락CTS 상용 모델 | ||
올 여름 개봉할 <툼레이더2>엔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오프로드용 지프 ‘지프 랭글러 루비콘’이, <터미네이터3>에는 도요타의 렉서스 SC430 시리즈가 ‘출연’할 예정이다.
하지만 영화 PPL의 효과는 아무도 장담 못하는 게 현실이다. PPL이란 직접적인 상품 광고와 달리 제품의 특성을 교묘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으면서도 그 장면이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부각되지 않을 경우에는 흐지부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소비자 단체들은 PPL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과장된 제품 이미지를 갖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PPL이 여느 PPL보다도 까다로운 이유는 또 있다. 자동차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과 함께 대표적인 PPL 품목인 건 사실이지만 다른 제품들에 비해 고가여서 바로 판매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국내 시장의 경우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낸 경우는 지난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했던 렉서스와 올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통해 선보인 ‘캐딜락 CTS’정도.
특히 캐딜락 CTS는 지금까지 ‘올드’한 차로 알려졌던 캐딜락의 기존 이미지를 벗고 지난 5월22일 영화 개봉 이후 이미 60대나 팔려나간 상황이다. 영화 개봉 전만 해도 매달 판매량이 5대가 고작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효과를 본 셈이다.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아직 자동차 PPL은 그리 흔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충무로 영화 관계자들과 자동차 마케팅 관계자들은 그 이유가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 관계자는 “흔한 일상적인 대화가 자동차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연속극들과 달리 영화에는 사실상 자동차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대부분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루는 영화의 속성상 자동차 PPL이 주로 고급차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개봉한 <역전에 산다>의 경우에도 도요타의 렉서스 SC430이 ‘고급 외제차’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때문에 국내 기아나 현대 등의 자동차 업체들은 <올인> 등 드라마를 대상으로 한 자사의 중저가 자동차 PPL에 주력하고 있다.
블록버스터의 등에 업혀 국내에 상륙하는 외국산 자동차들의 PPL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힘이 드는 데다 아직 영화 PPL에선 걸음마 단계인 국내 자동차 업계의 기를 죽이는 ‘과시용’이란 얘기다. 외제차를 몰고 온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