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포문을 연 <장화, 홍련>의 성공으로 올해 공포영화는 다른 어느 때보다 청신호가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과연 무슨 영화 어떤 장면에서 공포를 느꼈을까? ‘공포의 정체’를 아는 공포영화 감독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최고의 공포영화’들을 찾아가 보자.
제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을 비롯해 <거울 속으로>, <아카시아>, <4인용식탁> 등이 최근 관심을 모으는 ‘무서운 영화’들. 7월 말에서 8월 중순 사이 개봉 예정인 이 영화들은 현재 막바지 후반작업이 한창이다.
이 무서운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공포영화와 그 영화 중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 그리고 어떤 기법들이 공포장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냈는지 꼽았다.
▲ 공포영화 감독들이 뽑은 공포영화 포스터들. 위부터 <회로> <오디션> <엑소시스트> <서스페리아> <샤이닝> <여고괴담>.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일본의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이 만든 <회로>(2001년)란 영화가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라고 꼽겠다. 소재는 사실 요즘 흔하게 나오는 얘기로,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이 죽거나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평범한 소재도 얼마든지 무섭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종전에 나온 공포영화들이 시각·청각적으로 자극을 해서 ‘놀라게’ 했다면 <회로>는 정말 ‘무서워서 계속 못 보겠다’는 기분이 들도록 한다.
이 영화에서 정말 공포스러운 장면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존재인 어떤 남자가 천천히 다가오는 장면이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한 신을 아주 길게 보여준다. 미동도 거의 없이 천천히 다가오는 그 남자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제발 이쪽으로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때 쓰인 기법은 롱샷을 이용한 롱테이크 기법이다. 불과 한 신인데 편집 없이 길게 처리해 보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4인용 식탁> 이수연 감독]
“일본인 미이케 다케시 감독이 만든 <오디션>(1999년)이 무척 공포스러운 영화라고 말하겠다. 이 영화는 신부감을 구하려는 남자가 오디션을 연다는 ‘발상부터 황당한’ 코미디로 처음 시작한다. 그러다 점점 뒤로 가면서 호러로 전이되는데 그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 놀라웠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죽어가며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는데, 이 장면이 슬픈 한편 섬뜩했다. 그 전까지 그녀가 남자주인공을 악랄하게 고문하던 걸 떠올리면 사랑이란 말도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디션>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정적으로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그 다소곳하고 정적인 모습에 익숙해져 안심하고 있을 때 여자가 갑자기 움직여 기절할 정도로 놀라게 한다. 사운드로 쉽게 무서움을 조성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순간에 등장하는 무서움이 아니라서 인상적이었다.”
[<여고괴담3> 윤재연 감독]
“박기형 감독이 만든 한국 영화 <여고괴담>(1998)을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겠다. 지금 <여고괴담3>을 만들게 된 데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는데, <여고괴담>은 한국적 정서에 맞는 귀신 이야기란 것이 흥미롭다. ‘지고지순한 귀신이 한을 품고 복수한다’는 한국의 귀신 이야기를 ‘여고’라는 현실에 잘 담았다.
이 영화에서 ‘공포스럽다’고 생각한 장면은 귀신보다는 사람이 나왔을 때다. ‘미친개’란 별명을 가진 선생이 아이들을 혼내는 장면인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심하게 아이들을 때릴 이유도 없는데 무섭게 때렸다. 어쩌면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울 거라는 공포가 담긴 장면이다.
<여고괴담>에서 공포의 느낌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 것은 귀신이 척척척 순식간에 다가오는 장면이다. 여기 쓰인 점프컷 기법은 이전에도 종종 쓰여왔지만 공포영화에서 이런 효과를 낼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이 더 돋보였다.”
[<장화, 홍련> 김지운 감독]
“공포영화 중 최고를 꼽자면 난 이 세 작품을 고르겠다. <엑소시스트>와 <서스페리아>, <오디션>이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년)는 워낙 유명한 영화지만 볼수록 무게감과 품격 있는 중후함이 마음에 들었다. 공포영화의 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느꼈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1977년)도 공포영화의 고전인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음산함이 깔려 있다. 영화 속 로마의 어두운 골목길, 텅 빈 광장, 학교 기숙사 등 공간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음산해서 공포스러운 영화였다.”
[<폰> 안병기 감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1980)과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2-Deep Red>(1975)를 좋아한다. 두 작품 모두 귀신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공포감을 안겨줬다.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이 아들을 죽이려고 설원에서 추적하는 장면이 무섭게 느껴졌다.
<서스페리아2>는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이 무척 공포스러웠다. 복도의 한쪽은 그림이, 한쪽은 거울인데 원래 세 사람 얼굴이었던 그림이 어느 순간 넷으로 늘어나 있는 것이다. 복도, 거울, 도끼라는 공포영화에서 가장 흔한 도구로 이렇게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단 점에서 대단했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