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은 단순히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수단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이다. 밥상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밥상 때문에, 경상남도가 시끄럽다. 경상남도 홍준표 지사가 재정부족을 이유로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만 무상으로 밥을 주고, 먹고 살 만한 아이들에게는 밥값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집 아이라는 증명서를 내고 밥을 먹게 하는 일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그것도 가장 예민한 성장기에 말이다.
분명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예민한 성장기에 가난 때문에 사사건건 시선을 받으면 가난을 부끄럽게 여겨 기를 펴지 못하게 된다. 더구나 밥 먹는 일에 주눅이 들어서야.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오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갑자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오기가 생각난다. 그가 그런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도민들에게 물어봤을지나 궁금하다.
“학교에 밥 먹으러 오나, 공부하러 오지”라는 말 속의 철학도 궁금하다. 단순히 영어 문장 외우고 수학 문제 푸는 것만 공부가 아니다. 밥 먹는 것까지 공부다. 학교라는 것이 ‘누가 누가 잘하나’를 결정하는 대회가 아니라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우는 배움터라고 한다면!
어쩌면 밥 먹는 교육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어서 가장 중요한 교육인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놓인 이 밥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 밥을 만들기 위해 누가 애썼는지, 밥상을 받는 저 친구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밥상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마음으로 밥을 먹는지, 밥상을 함께하는 친구들과는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런 것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감성지수, 관계 지수와 관련된 중요한 배움터가 아니겠는가.
나는 밥은 대지의 숨결과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옛 성인들의 선물이라고 배웠다. 밥을 통해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은 나의 본체임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먹지 않는 음식은 받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받은 음식은, 그것이 비록 걸인의 찬이라고 해도 황후의 밥처럼 공손한 마음으로 받아 천천히 먹으라고 배웠다.
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밥 먹는 것, 하나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바로 드러난다. 한 그릇의 밥과 한 종지의 찬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