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토스’ 검찰이 ‘스파이크’
현대중공업이 5년 만에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로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연합뉴스
특히 국세청은 조선업 등 불황을 겪고 있는 특정업종에 대한 세무조사를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번에 세무조사에 착수함으로써 뭔가 ‘큰 건’이 걸려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마저 낳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세정당국이 특별 세무조사를 통해 기업 비리를 들여다보는 게 통상적이지만, 이미 공개적인 부패척결의 기치를 내걸고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선 정기 세무조사나 특별 세무조사나 똑같은 파장과 무게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기업들이 현 정부 들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던 기업들로 비리혐의를 캘 만한 단서들이 있었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현대중공업의 세무조사도 기업사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기업 비자금 수사가 이명박 정권 시절 특혜기업이나 일부 업종에 국한되지 않은 전 재계의 ‘폭탄 돌리기’ 양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의 칼끝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자금 흐름 스크린을 통해 일부 수상한 거래가 포착돼 통보를 받았거나, 국세청이 세무조사 자료가 있는 기업들로 겨눠지고 있다.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포스코건설, 경남기업, 동국제강 등은 이미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자금거래 스크린을 통해 비리 혐의를 둘 만한 단서가 발견된 기업들이다. 포스코건설은 2013년, 경남기업은 지난해 받은 세무조사가 수사의 시작점이었다. 동국제강도 지난 2011년 세무조사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동국제강이 해외에서 거래 대금을 부풀려 이를 돌려받거나 손실처리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는 이번 압수수색의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국세청의 조사전력이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까지 받아 600억 원대의 추징금을 낸 바 있다.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이사는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지난해 말 징역 2년의 실형 선고도 받았다. 검찰이 이를 토대로 재수사를 벌일 경우 추가로 털어낼 비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검찰은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계좌추적영장을 발부받아 롯데쇼핑 임직원들의 계좌 내역을 추적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는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당좌수표가 물품 거래에 쓰이지 않고 현금화돼 비자금으로 조성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지난해 금호산업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고, 박삼구 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내사를 벌인 바 있다. 유력한 타깃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대에 특혜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그룹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기업사정 확대 여부의 변수다. 검찰이 2011∼2012년 중앙대가 안성캠퍼스와 본교를 통합하고 적십자간호대를 인수합병할 때 청와대에 재직했던 박 전 수석이 교육부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수석의 검찰 소환을 계기로 수사의 외연이 두산그룹으로 넓어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포스코 본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현대중공업은 이번 세무조사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이중 악재에 봉착했다. 조선 경기의 장기 침체로 지난해 사상 최악인 영업손실 3조 2495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인력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실적회복을 위해 최길선 총괄회장과 권오갑 사장을 구원투수로 투입해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지만, 이번 일로 경영쇄신의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노조가 지난달 권 사장을 형사고발하는 등 내부 분위기도 어수선한 상태다.
현대중공업의 재계 서열도 뒷걸음질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4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현황’에서 현대중공업은 재계 순위(공기업 포함) 10위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9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5년 만에 내려앉은 것이다.
현대중공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조선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조선 ‘빅3’ 중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6월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해 10월쯤 일정 연장 없이 마무리됐다. 삼성중공업은 2010년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이후 아직 국세청의 정기조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불법 행위가 있었던 기업들은 모두가 검찰 수사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나오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