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딸”vs“구닥다리 아빠” 의자 뺏기 장군멍군
일본의 유명 가구업체 오쓰카가구의 오쓰카 가쓰히사 회장(왼쪽)과 그의 장녀인 구미코 사장(사진출처=동양경제)이 경영권 다툼을 벌여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본의 유명 가구업체가 경영권 다툼으로 시끌시끌하다. 주인공은 오쓰카 가구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오쓰카 가쓰히사 씨(71)와 그의 장녀이자 사장인 구미코 씨(47)다. 반년 동안 무려 사장이 두 번이나 바뀌는 등 오쓰카가구의 경영권 분쟁은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했다. 아버지와 딸이, 실적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해임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온갖 인신공격성 발언들도 난무했다.
사실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의 다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형제간의 골육상잔이 아닌, 부녀간의 드문 싸움이라 세간의 관심은 집중됐다. 먼저 아버지가 선공에 나섰다. 지난 2월 가쓰히사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나쁜 자식을 키웠다. 내 인생 최대 실수는 딸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구미코 씨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아버지의 경영방식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오쓰카 가구는 이렇게 ‘회장파’와 ‘사장파’로 두 동강이 났다. 혈연으로 맺어진 부녀가 이토록 서로를 비방하며 다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경영방침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장인정신을 토대로 한 ‘고급 전략’을 고수하려는 아버지와, 외국 중저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중적인 제품’을 확대하려는 딸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부녀의 치열한 전쟁은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
1969년 설립된 오쓰카가구는 일본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가구회사다. 장롱을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가쓰히사 씨가 25세 때 오동나무 장롱을 판매하는 가구점을 연 것이 그 시작이었다. 작은 가구점에 불과했던 회사는 가쓰히사 씨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부지런히 뛰어다닌 덕에 제법 큰돈을 벌었다. 고도성장기라는 시대의 바람을 타고 회사 규모는 날로 급성장했다. 특히 “가구점으로는 드물게 ‘멤버십 제도’를 도입한 것이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멤버십 제도는 상류층을 겨냥한 이른바 고급 마케팅 전략이었다. 오쓰카 가구를 방문하는 모든 고객은 고객카드를 작성한 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만 가구를 구경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직원이 여러 가지 다양한 가구를 권유하면서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최상의 접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오쓰카 가구는 일본 전역에 수십 개의 대형 매장을 운영할 만큼 몸집이 불어났다.
매출액은 계속 증가해 2003년 730억 엔(약 6700억 원)으로 정점에 이르지만, 이후 니토리와 이케아 등 중저가 브랜드 제품에 밀리면서 주춤거렸다. 이때 사장에 취임한 것이 바로 장녀인 구미코 씨다. 2009년 취임 당시 구미코 씨는 “누구나 손쉽게 접근 가능한, 친근한 이미지의 오쓰카 가구”를 모토로 삼았다. 우선, 고급 가구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회원제나 직원 동행 같은 운영방식부터 대폭 축소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쇼핑 시 간섭 받기를 싫어한다”는 판단에서다.
또 고가 제품 대신 중저가 제품에 힘을 쏟았고 온라인 판매를 활성화했다. 바꿔 말하면, 아버지가 고수해왔던 경영방침을 모조리 뒤엎은 셈이다. 자신의 경영철학을 부정하는 딸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가쓰히사 회장은 “흐름만 쫓아가면 결국 니토리나 이케아의 후발업체로 전락할 뿐”이라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가쓰히사 회장은 지난해 7월 주주총회를 통해 구미코 사장을 해임하고, 일선에 복귀하게 된다. 회장의 지분이 18%로, 구미코 사장 지분(10%)을 압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쓰히사 회장은 다시 ‘멤버십 제도’를 부활시켰고, 막대한 광고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문 전단지와 TV 광고로 고객을 유치하는 과거 경영방법이 아직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쓰카가구 홈페이지.
이후 부녀의 다툼은 점입가경으로 치닫았다. 가쓰히사 회장은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실전경영을 모르는 구미코가 회사에 테러행위를 가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전문 직원들의 특화된 안내 서비스를 통해 고품질의 가구를 공급해왔던 게 지금까지 회사의 성장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다음날 구미코 사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경영방식은 시대착오적”이라면서 “오직 실적만으로 판단해 달라”고 맞섰다. 양쪽 모두 “자신의 경영방침이 회사 생존에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3월 27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딸은 아버지의 회장 퇴임을 요구하고, 아버지는 딸의 사장 해임을 요구하는 살벌한 싸움으로 발전했다. 서로의 퇴임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공방이었다. 원래라면 손을 맞잡아야 할 부녀지간의 전쟁에 한 직원은 이렇게 개탄했다. “까다로운 회장과 만만치 않은 사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그동안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데 집안싸움이라니…,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오쓰카 집안 이외에서 사장이 선출되는 게 낫겠다.”
흥미로운 것은 가쓰히사 회장과 구미코 사장에 대한 업계의 평가다. 업계 사람들은 “경영 방침은 서로 정반대여도, 부녀의 성격은 ‘판박이’처럼 똑같다”고 입을 모은다. 아버지 가쓰히사 회장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바로 장녀 구미코 사장이라는 것.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는 “두 사람 모두 불같은 성미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야만 직성이 풀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번에 잘라낼 만큼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큰 소동이 되어 버렸다”고 전했다.
경제지 <프레지던트>는 “이번 분쟁은 현재 일본 기업계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 방침을 둘러싸고 창업주 세대와 2~3세대의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인정신을 고수하려는 일본식 경영법과 합리주의를 내세운 미국식 경영법의 충돌이다.
물론, 둘 다 한계는 있다. 종신고용 등 사람을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법은 불경기에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미국식 경영법은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해 사람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단점을 안는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동에서 대다수의 점장들은 가쓰히사 회장 편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월 27일, 주주들은 딸 구미코의 손을 들어줬다. 구미코 사장의 연임 및 창업자 가쓰히사 회장의 퇴임 요구안이 의결권의 61%을 얻어 가결된 것이다. 반면 가쓰히사 회장을 사장직으로 복귀시키고 구미코 사장을 퇴임시켜야 한다는 안은 부결됐다. 이로써 수개월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녀의 치열한 전쟁은 주주들의 판단으로 막을 내렸다.
한편 부녀 사이의 이번 분쟁으로 오쓰카 가구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오쓰카 가구의 3월 매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37.8% 감소했다”고 밝히며 “‘딸과 아버지가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누가 오쓰카 가구를 사겠는가’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가족들 ‘입장’ 양분 왜? 장남, 누나에게 ‘스펙 콤플렉스’ 아버지와 딸 싸움에 다른 가족들의 입장도 두 갈래로 완전히 나뉘었다. 먼저 어머니 요코 씨와 장남인 가쓰유키 씨는 아버지 가쓰히사 회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딸 구미코 씨 측에는 차녀 마이코 씨와 삼녀 도모코 씨, 차남 마사유키 씨가 함께 했다. 가쓰유키 씨를 제외한 다른 형제자매는 모두 장녀의 편에 섰다. 그 이유에 대해 <주간포스트>는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본 것이 구미코 씨였다”면서 “구미코 씨가 동생들에게는 부모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강] |
오쓰카가구 적자에 빠진 까닭 “둘 다 경영은 빵점이므니다” 일본 가구업계 1위는 토종브랜드인 ‘니토리’다. 1967년 일본 삿포로에서 30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출발한 니토리는 2001년 업계 1위였던 오쓰카 가구를 누르고,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쓰카가구 전경. 오쓰카 가구가 지난 몇 년간 연속 매출액 감소라는 수렁에 빠진 반면, 니토리는 리먼쇼크에도, 동일본 대지진 때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착착 영업이익을 늘려왔다. 2014년도에는 28기 연속 증수 이익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현대비즈니스>는 “일본 가구업계를 대표하는 두 곳의 명암을 가른 것은 경영자의 수완”이라고 분석했다. 1978년 니토리 사장에 취임한 니토리 아키오 씨(69)는 원가를 탁월하게 낮추면서도 토털코디네이션을 도입한 혁신가로 유명하다. 가구뿐만 아니라 수납용품, 가방, 소품 등 저가의 토털상품을 갖추고 불경기에 시달리는 소비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2006년 스웨덴의 가구기업인 ‘이케아’가 일본에 진출하자, 니토리는 도심에 소형 점포를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도심 외곽에 창고형 매장을 짓는 이케아와 달리 고객이 쉽게 매장에 들를 수 있게 차별화를 둔 것이다. 또한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이미 미국을 비롯해 대만, 중국 등에 2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니토리는 중국 시장에 안착하면 조만간 한국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현대비즈니스>는 “오쓰카 가구의 부진은 가쓰히사 회장과 구미코 사장 등 경영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못했고, 적자회피에 급급한 경영을 반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잡지는 “창업자와 창업자의 딸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둘 다 더 빨리 ‘경영자 실격’으로 낙인 찍혔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