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최철한)’가 혀를 물게 한 ‘괴동’의 한수
목진석 9단
그러나 목 9단은 3월 31일, 4월 1~2일, 폭풍 같은 기세로 세 판을 몰아치며 우승컵을 안았다. 2국을 목 9단이 이겼을 때도 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3국을 또 이기자 비로소 팬들의 예상이 조금 움직였지만, 그래도 목 9단의 우세는 아니었고, 5 대 5도 아니었다. “이제는 모르게 되었지만, 결국은 최 9단이 이기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제4국. 목 9단이 백을 들었다. 목 9단은 조금 굳어 있었다. 초반이 잘 풀리지 않았다. 최 9단이 앞서나갔고, 흐름은 종반에 이르도록 바뀌지 않았다. 승부가 최 9단에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굳어진 채 어쩐지 무기력하게도 보이면서 조용히 따라오던 목 9단이 돌연 몸을 일으켰다.
<1도>가 제4국의 종반 모습이다. 중앙 흑집이 상당해 보인다. 백이 중앙 흑집을 삭감하고 있다. 백1로 끊고, 3으로 하나 찔러두고, 돌아와 5로 단수. 계속해서 <2도> 백1로 다시 단수친 것이 목 9단의 승부호흡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본 것. 최 9단은 흑2로 끊었다. ‘독사’의 자존심이다. 결단은 언제나 어려운 것. 자존심을 보류하고 이기는 길로 가느냐, 자존심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느냐.
<3도> 백1부터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흑4와 10은 흑▲ 자리 따낸 수, 백7은 백1 자리 따낸 수. 그리고 좌상쪽 백11의 팻감. 흑이 이걸 받지 않았다. 받을 수가 없었던 것. 다음 팻감이 없으니까. 흑12로 패를 해소하고 백13으로 따내는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 흑은 좌상이 함몰했다. 여기는 A-B가 맞보기. 대신 <4도> 흑1이 놓이면서 이 부근 백돌이 한 무더기 떨어져 나갔다. 득실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백은 선수를 잡았고, 필쟁의 요처인 우변 A를 차지했다. 역전이었다.
검토실의 말에 따르면 “<2도> 백1로 도발했을 때 흑은 참아야 했다. <5도> 흑2로 이어야 했다”는 것. 검토실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전에서 막상 그렇게 참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백3으로 이쪽에서 뚫고 들어오는 수가 있고, 그러면 흑은 4로 몰고 6으로 따내 살아가야 하는데, 백도 7까지 연결해 가니 이걸 보기 싫었을 것이고, 프로라면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독사가 스스로 혀를 깨물게 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흑은 <6도> 흑1-3으로 백 두 점을 잡고, 그러면 우하귀 백6-8로 붙이고 잇는 것과 좌상귀 흑9-11로 젖혀 잇는 선수 끝내기 정도가 남는데, 이건 흑이 반면으로 10집 정도 남기는 계가라는 것이었다.
목 9단은 “이번 우승이 무려 15년 만의 개가”라는 것, 그리고 바둑이 끝나고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소감 첫 마디로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후 잠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한 주 내내 화제를 독점했다. 목 9단의 첫 타이틀은 1999년 제3기 프로10걸전 우승이고, 두 번째가 2000년 제19기 KBS바둑왕 우승인데, 프로10걸전은 신예기전이었고, KBS바둑왕은 속기전이니 본격 타이틀은 사실 이번 GS칼텍스배가 처음인 셈이다. ‘15년 만의 귀환’이라는 것은 ‘KBS바둑왕 이후’를 말하는 것으로 그때 목 9단은 이창호 9단과 겨루어 2 대 1로 이겼다. 이창호 9단에게 이겼으니 그 다음은 탄탄대로, 승승장구였어야 했건만 그게 그렇지 못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평군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준우승도 많았지만(7회), 타이틀은 번번이 이창호 9단의 벽 앞에서 막혔던 것. 눈물은 그 아팠던 15년 세월의 추억이었다.
프로기사 중에서 교회나 절이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은 드물다. 직업 중에서 종교인이 가장 적은 동네가 바둑계일지 모른다. 승부는 오로지 혼자 싸우고, 혼자 극복하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믿을 것은 나의 실력과 의지일 뿐이다.
“내 경우는 신앙이 대국에도 물론 도움이 된다. 마음의 평안이다. 이번 결승전 때도 그랬다”는 목 9단에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답을 문자로 보내왔다. “(신약의) 빌립보서 4장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광구 객원기자
목진석 대국서 ‘정장 차림’ 화제 네티즌 “다른 기사도 본받아야” 이날 화제가 된 것은 하나 더 있었다. 5번기의 첫날 목진석 9단은 “평소 즐기는 복장”이라는 회색 콤비 상의에 남방셔츠 차림이었다. 다음 사흘은 전부 넥타이를 맨 정장이었다. “첫 판을 져서 기분전환을 해보려 했다”는 것인데, 이게 팬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단아하다” “보기 좋다” “역시 모범적이다” “바둑 잘 두고 해설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매너도 짱이다” 댓글은 칭찬 일색으로 넘쳐나다가 프로기사의 대국 복장에 대한 의견으로 나아갔다. “다른 프로기사들도 본받아야 한다” “최소한 TV 대국 때만이라도 정장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아마추어 내셔널리그도 복장 규정이 있는데, 한국기원이나 프로기사회에서는 왜 이런 규정을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목 9단은 “제 또래라면 대개 그렇겠지만, 저도 어려서 공부할 때 일본 기보를 많이 보았습니다. 공부 재료가 그것밖에 없기도 했지만…아무튼 그래서 바둑을 예(藝)나 도(道)쪽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같습니다. 끝없이 나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바둑을 통한 성숙…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