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한 사랑>에서 가슴 시린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희애와 차인표. | ||
“사실은 집에 있을 때요, ‘인어 아가씨’를 연기하는 장서희씨를 보면서 아 너무 잘한다. 나도 저렇게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떨리고 불안하고 한없이 부러웠어요. 아무튼 다시 연기할 생각만 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제야 조금 자신감도 생기고 속도 후련해요. 너무 많이 울어서 당분간 울 일이 없을 거 같네요.”
오랜 공백 끝에 <완전한 사랑>의 완전한 연기로 완전한 컴백에 성공한 김희애. 그녀가 최근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측근에게 털어놓았다는 이 고백이 생각보다 너무 소박하고 인간적이다. 김희애는 촬영에 한창 몰입할 당시 인터뷰도 응하지 않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랬던 그녀기에 극중에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요즘 더욱 마음이 허하다.
<완전한 사랑>이 아니면 ‘완전한 대화’를 할 수 없는 요즘. 극중 ‘영애’의 죽음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막상 그녀가 영 사라지고 나니, 덩그러니 남겨져 슬픔과 허전함에 요동치는 게 비단 그녀의 가족뿐이 아닌 것 같다.
올해로 연기 경력 20년을 맞는 김희애. 이 기념비라도 세워주듯, 연말 SBS 연기대상 시상식의 유력한 수상자로 지목됐으니 이제 재기에 대한 우울증은 눈 녹
듯 사라지게 됐다.
반면 이승연의 입장은 약간 씁쓸한 듯하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2002>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미혼모를 연기한 바 있는 그녀는 누구보다 김희애의 연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다.
“영화 찍을 때, 왜 나는 희애 언니처럼 연기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연기하면서) 내가 혼자 울었다면 희애 언니는 남도 울리지 않았느냐. 그 내면 연기를 보면서 감탄을 넘어 창피했을 정도였다.”
올해로 데뷔 13년의 이승연. 줄곧 정상을 달려온 톱스타답게 그녀의 작품 리스트는 화려하지만 그런 매력을 돋보이게 한 ‘대표작’이 아직 없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나 보다. 김희애를 향한 사람들의 기립 박수 뒤에서 어쩌면 그녀는 지끈거리는 ‘연기’라는 두통을 ‘집념’이라는 아스피린으로 달래고 있을지 모르겠다.
▲ 홍석천과 이승연도 ‘김수현표’ 드라마에서 성숙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 ||
“연기하는 내내 암투병중이신 장모님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는 차인표. 그는 마지막 촬영 후 가족과의 여행을 계획중이다.
“생명의 끝자락를 봐야 하는 ‘역할’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실제로는 어떻겠냐”는 그. 주변 상황을 통해, 또 드라마를 통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층 깊어졌다. 드라마를 마치며, 그는 자신의 팬페이지에 이런 글도 올렸다.
“더욱 틈날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됐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는, 어쩌면 막연한 기도에서 요즘엔 구체적인 기도로 바뀌었다. ‘우리 장모님, 오늘밤은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내일은 꼭 미음이라도 드실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김수현 작가 역시 이번 작품이 남다르게 느껴질 만하다. 몇 년 전 작가가 직접 만나본 김수현 작가는 ‘으레 가질 수 있는’ 그녀에 대한 편견(?)을 모두 씻어주는 모습이었다. 깐깐하고 근엄하리라 예상했던 터에 내심 긴장을 하고 약속장소인 자택을 방문했으나 김수현 작가는 너무나 편한 이모와도 같았다. 스스로 ‘나무를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김 작가는 정말 화초와 나무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여유 있고 안정된 그녀의 모습을 접하며 ‘좋은 글은 좋은 정신에서 나온다’는 가르침이 새롭게 와닿기도 했다.
처음,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새로 방영된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이 통속적인 제목에 ‘힐힐’댔다. 거기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니! 그런데 석 달 만에,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국민 전체가 한순간에 바보 최면에 걸린 채 넋을 놓고 울고 또 울었다. 그 통속적인 상자 안에 그리 많은 ‘가족’의 얼굴이 담겨 있을 줄이야!
김희애 같은 이웃 언니, 차인표 같은 남편, 정혜선 같은 엄마, 토끼 같은 아이들…. 쓰러져 가고 잊혀진 ‘가족’의 자화상이 <완전한 사랑>을 통해 사무치게 이어졌다. <완전한 사랑>이 결국 우리에게 남긴 건, 눈물로 씻겨진 존재의 ‘사랑’이고 ‘희망’이어서 더 값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