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그저 집 디자인에 유혹돼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순간은 ‘집 주인’이 아주 맘에 들 때다.
“그 집에 가면 집주인도 정말 좋고 공짜로 얻어먹는 것도 많아!”
이 말을 프로그램에 대입시키면 “그 방송을 보면 MC도 정말 재밌고 생각이 바뀌는 것도 진짜 많아!”일 것이다.
나라가 어려워질수록 이런 ‘오락성과 공영성’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그 선두에 MBC <느낌표>란 프로그램이 있다.
책읽기 캠페인을 성공시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대한민국 청소년을 위해 뛰는 <하자! 하자!>, 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보여주는 <아시아! 아시아!> 코너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예능 방송의 재미에서 벗어나 터지는 웃음 뒤에 밀려오는 ‘휴머니즘’을 지난 2년간 선물 받았었다.
지난 2003년 지상파 방송국의 가을 개편 화두 역시 ‘느낌표를 표방한 방송 제작’이었다. 이후 KBS <대한민국 101%>(MC 김국진 지석진 등)나 SBS <해결! 돈이 보인다!>(MC 이영자 강성범)와 같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지만 상당 부분 ‘느낌표 흉내내기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인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집주인’, 다시 말해 MC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신’(?)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집 짓는 기술자’에게서 엿보이는 ‘구슬땀’이 보이지 않았고, MC는 사람들을 허물없이 집에 들락거리게 할 ‘서민적인 대화법’이 부족해 보였다.
다이어트 파문을 통해 진실성을 다친 이영자가 길거리에 유관순처럼 뛰어들어 그저 “하자! 하자!”고만 외치니, MC들은 팔뚝만 아프고 시청자는 눈만 퍽퍽해지고 만다. 너나 할 것 없이 시도한 여러 ‘공영 프로그램들’은 결국 “역시 느낌표!”라는 원조에 대한 프라이드만 부추겨 놓은 꼴이 됐다.
그런데 그런 <느낌표>의 뿌리도 최근 들어 휘청거리고 있어 걱정스럽다. <느낌표>의 간판 PD였던 ‘쌀집 아저씨’ 김영희씨의 도중하차로 갑작스레 중간 개편을 한 <느낌표>가 지난 1월3일 새롭게 선보인 첫 방영분 때문.
가장 중심에 놓여 있는 시청자들의 불만은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후속 코너로 공개된 <운동이 운명을 바꾼다!>의 새 진행자 ‘주영훈과 김진수’의 입성이다.
그동안 칭찬 일색이던 시청자 게시판에 최근 ‘○○○은 제발’ ‘느낌표가 어렵게 쌓아 올린 이미지를 무너뜨리지 말라’ ‘그리운 김용만 유재석’이란 제목들로 거세게 확산되고 있는 것. 넉넉한 이미지의 김진수는 봐준다 쳐도 ‘도시의 뺀질이’ 이미지가 강한 주영훈은 기존 <느낌표>의 MC를 거쳐 간 이경규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박경림의 아성에 다른 색을 칠해 놓은 듯한 ‘언밸런스한 결정’이란 지적이 릴레이를 이루는 실정이다.
지난해 이경규와 신동엽의 바통을 이어받아 ‘박수홍-윤정수’가 <아시아! 아시아!>를 선보였을 때도 처음엔 네티즌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러나 ‘며칠씩 더위와 기근에 시달리며 아시아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두 MC들의 비지땀이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끌어내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주영훈은 절대 자신을 희생하지 않을 것 같은, 그간의 대외적인 이미지 탓에 ‘피해’가 큰 편이다. 때로 그의 고생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고 엄살로 보이며, 그의 캠페인성 외침은 설득으로 다가오지 않고 ‘잘난 척’으로 보일 때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니 말이다.
<느낌표> 역시 처음부터 주영훈을 고려한 건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당초 <운동이 운명을 바꾼다> 코너 아이템은 강호동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것. 제목도 처음엔 강호동의 <온 국민 천하장사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강호동이 SBS <실제상황 토요일>의 진행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담당 PD와 당분간 MBC 일을 안하기로 약속했다”며 거절, 제작진은 순간 휘청댔다.
거기다 ‘믿었던’ 김용만이 출연료 협상에서 엇갈린 입장 차이로 출연이 백지화가 되고, 유재석은 5개가 넘는 프로그램의 MC 계약을 이미 마쳐 더 이상 ‘연장’이 불가능함을 통보해왔다. ‘보증 수표 MC들’에 대한 ‘콜’ 신청이 연달아 불발되던 어느 날, 새 제작진의 ‘옷깃’을 강력하게 붙잡은 이가 바로 주영훈이었다.
그가 “차갑게 고착된 내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은 ‘느낌표’뿐이다. 시간과 노력을 무한대로 투자해서라도 뭔가 깊이 있는 스타로 거듭나고 싶다”고 피력, 급기야 제작진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느낌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파장이 나날이 심화되면서, 평소 주영훈을 반대했던 <느낌표>의 터줏대감 제작진과 새 제작진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왕왕 목격되기도 한다고.
<느낌표>를 2년 동안 이끌어 온 한 작가는 “작년에 신동엽의 뒤를 이어 서경석과 신정환을 영입했지만 사실상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영향력 있는 MC의 선택이 더 절실해진 시점인데…”라면서 “느낌표 전성기는 이제 끝난 것 같다.
우리 프로그램은 말 잘하는 MC보다 서민적인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 진행자가 맡아야 한다”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느낌표>를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능력을 떠나 주영훈과 같은 MC들이 정형화된 이미지 때문에 겪어야 하는 홍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불안정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느낌표>팀은 1월 개편 첫 방송 이후 서둘러 김용만과 김제동을 ‘물밑 재계약’하는 등 비밀리에 급회전을 시도 중이다. 올 봄 개편을 기점으로 김제동은 <하자! 하자!> 6탄에, 김용만은 <운동이 운명을 바꾼다>의 후속에 전격 투입될 예정이라는 귀띔.
한번 손님들을 잃으면 집주인이 제 아무리 성격을 바꿔도 회복이 어렵다. 설사 주인이 바뀐다 해도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손님들은 절대 그 집 문지방을 쉽게 넘으려 들지 않을 터. 이번 논란으로 ‘물음표’처럼 한 번 구부러진 <느낌표> 역시 위태로워 보인다. 한 번의 우여곡절은 ‘물음표’가 되지만 두 번의 시행착오는 ‘말줄임표’가 되어 영원히 갈 길을 잃고 마는 수도 있다.
부디 ‘원조’를 고수해 온 <느낌표>의 두터운 자존심과 긴 노하우로 예전의 명성을 우뚝 회복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