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밑바닥에서 출발해서 세상적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끝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난 후 감옥 안에서 그들은 더러 변호사인 내게 속을 털어놓았다. 지문인식시스템을 개발해 국제금융거래의 지배까지 눈앞에 두었던 한 기업가가 재벌반열에 오르는 순간 바닥이 안 보이는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그는 학연이 없는 대신 뇌물로 이 사회의 촘촘한 그물망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단군 이래 최고 사기꾼이라는 명칭을 얻은 유통업체의 회장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돈은 정치꾼들이 먹고 그들은 죄명딱지를 붙여 그를 감옥으로 보냈다. 중형을 선고하는 자리에서 재판장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아느냐고 물었다. 밀랍으로 만든 허약한 날개를 달고 너무 높이 오르려고 하다가 태양의 열기 때문에 날개가 녹아 추락한 신화의 주인공에 피고인을 비유했다. 재판장이 덧붙였다. 일반인이 보기에 사기가 아니더라도 법은 상황에 따라 사기죄로 선고할 수도 있다고.
국민적 지지도를 높이거나 지난 정권에 보복하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비리척결이다. 그런 때 적당한 희생양이 성완종 전 회장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의 입을 막으면 여러 사람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전 회장은 그가 뿌린 돈의 비밀을 지옥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몇 명의 핵심권력의 이름과 그들에게 준 돈을 적은 메모를 죽음에 동반했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그들과 한판 붙어보겠다는 강한 메시지다. 그의 메모에 적힌 인물들의 반응이 신문에 나오고 있다. 황당무계한 허위사실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벌써 사람이 죽어 증거가 없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변호사를 30년 해오면서 서민에게는 정황으로만 유죄를 선고하는 자유 심증이 적용되는 걸 봤다. 더러 거물들에게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고 결정적인 증거가 외면되는 걸 보기도 했었다. 그게 권력의 힘이다. 이 사회에서 진짜 나쁜 놈들은 깨끗한 척하면서 높은 자리에 앉아 뒷거래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빨리 다른 사건이 터져 신문에서 그들의 이름이 덮이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은 국민들이 곧 망각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법은 권력자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연자 맷돌에 갈 듯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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