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 아닌 잿밥에 한눈팔 일 없겠네
얼마 전 막내린 2015 서울모터쇼 모습.
차 말고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뭐니뭐니해도 레이싱 모델이다. 누가 더 섹시한가. 이런 경쟁은 멋진 차보다 노출 심한 레이싱 모델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불러왔다. 사정이 이러니 자동차업체들은 어쩌면 모델의 노출 수위를 더 높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모터쇼’가 아닌 ‘모델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모터쇼의 꽃이 ‘신차’에서 ‘모델’로 바뀌어 불리기까지 한다. 월드프리미어라고 불리는 신차 공개보다 어느 모델이 더 섹시한지에 관심을 더 둔다. 이런 경쟁 때문에 모터쇼에 어린이를 데려가기 민망할 정도다.
‘성’을 미끼로 한 마케팅 전략.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자본은, 언론이 이런 것들을 지적한다고 이런 행위를 하지 않을 만큼 약하지 않다. 그리고 올댓카는 그런 자동차업체들의 행태에 딴죽을 걸 능력도 생각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흥행에 성공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런 방식이 올바른지 의문이 들 뿐이다. 조금 더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은 없을까 아쉬울 뿐이다.
그런데 22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16회 상하이 국제 모터쇼에는 레이싱모델과 어린이 입장이 금지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모터쇼의 꽃’으로 불리는 레이싱 모델을 없애다니. 지난 10일 관영 차이나데일리 인터넷판과 화상보 등에 따르면 이번 모터쇼는 전 세계 20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신차, 친환경차 등 200여 종의 차량을 선보인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이미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중국은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과 판매량이 모두 2300만 대를 돌파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판매국으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중국 자동차 판매 성장속도가 이전보다는 주춤해졌지만 2014년 말 기준 중국인들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1억 3000만 대다.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은 3억 명이 넘는다. 상하이모터쇼는 베이징모터쇼와 격년으로 열린다. 세계 5대 모터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다. 이 정도로 성장한 중국시장은 자동차 업체들 입장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이런 대규모 행사에 왜 레이싱모델을 없앤 것일까. 자동차 업체들은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도. 모터쇼 조직위원회 측의 발표는 ‘사고를 예방하고, 단순 구경꾼보다는 구매력을 갖춘 잠재 소비자가 차에 집중할 수 있게 해 모터쇼 본연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것. 조직위는 지난해 12월 31일 밤 늦게 일어난 상하이 압사사건을 거론했다. 당시 새해맞이 행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린 학생이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9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노출이 심한 레이싱 모델 주변으로 인파가 몰리다 보면 사고가 나기 십상인 데다 이들 대부분이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을 쓰다 보니 모터쇼 취지가 흐려진다는 게 주최 측의 판단이다. 사실 중국 모터쇼는 ‘육체쇼’로 불릴 정도로 노출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몸을 노출하거나 투명한 옷을 입고 나오는 레이싱모델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전시차 위에 비단뱀을 올려놓기도 했다. 선정성에서 다른 모터쇼에 뒤지지 않는 서울모터쇼가 그나마 위안을 받은 것이 상하이(베이징) 모터쇼일 정도다.
레이싱모델이 없는 모터쇼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던 모터쇼에서도 레이싱모델은 없었다.
한편 세계 첫 모터쇼는 1897년 독일 베를린의 브리스톨 호텔에 자동차 8대를 전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자동차를 즐기는 유럽의 부잣집 도련님들이 중심이 돼 산업박람회(엑스포) 현장에 차를 전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듬해 프랑스에서도 자동차 클럽 회원들이 모여 비슷한 전시행사를 가졌는데, 이후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오늘날 파리모터쇼가 됐다. 1899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1903년 시카고 모터쇼와 영국 버밍엄 모터쇼가 열리는 등 북미, 유럽 국가들이 모터쇼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터쇼는 그 나라 경제와 자동차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란 말이 있을 정도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