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수양 학문으로 정식 교과목 가야죠”
한국기원 바둑아카데미 속 ‘바둑인성교육 연구위원회’가 구성됐다. 강나연 상임연구원(왼쪽)은 인성교육학문으로서의 바둑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 통과되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교육’과 ‘인성교육’은 동의어이고, 인성교육진흥법은 교육진흥법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인성교육진흥법은 새삼스럽고, 자괴스럽다. 예(禮), 효(孝) 같은 인륜의 전통적 가치,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인데,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가르친 것은 ‘경쟁’이었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으니까. 인성교육진흥법은 그것에 대한 반성일 터,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아 보자고 나선 것이니 새삼스럽고 자괴스럽지만, 다행인지.
어쨌든 한국기원-대한바둑협회가 인성교육진흥에 뜻을 같이 하면서 바둑아카데미 안에 ‘바둑인성교육 연구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한국기원은 작년에 홍석현 총재-박치문 부총재 체제 출범 후 다각도로 발전적 변화를 모색-시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위원회는 양종호 바둑아카데미 소장이 위원장이며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학과장, 프로기사 9단)가 자문위원. 연구팀은 강나연(문학박사, 상임연구원) 김바로미(아동가족학 박사, 유아-아동 인성) 김미라(문화경영학 박사, 창의 인성) 김세영(스포츠심리학 박사, 스포츠 인성) 이수정(바둑학 박사, 노인 인성) 이성근(현장 교육) 곽민희(현장 교육).
위원회의 강나연 상임연구원을 만나 바둑인성교육의 추진 방향 등을 들어보았다.
-동참이 가능한가?
“인성교육진흥법의 주요 항목을 보면 바둑은 충분히 동참할 수 있다.”
-어떤 조항들인가.
“몇 개만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제10조(학교의 인성교육 기준과 운영)와 11조(인성교육 인증)를 보면, 인성교육진흥법은 대통령령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므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학교를 비롯한 각급 공적 교육기관은 인성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국가와 지방단체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구성 및 운용을 전문단체 또는 전문가에게 위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근거해 바둑계(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의 참여가 가능하고, 보장받을 수 있다. 또 제12조(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인증)에 의하면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거나 인성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하려는 자에 대해 그 프로그램과 교육교정의 인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는 ‘인증’과 관련해서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제18조(학교의 인성교육 참여 장려)에는 ‘학교의 장은 지역사회 등의 인성교육 참여를 권장하고, 지도-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런 부문에 대해서는, 바둑계는 경험이 풍부하다. 각종 어린이-청소년 바둑대회, 또는 바둑체험학습, 여름방학 겨울방학 기간에 열리는 바둑캠프 등이다. 이런 것들은 바둑과 학교-지역사회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서로의 이해와 협조가 없이는 안 된다.”
-위원회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21세기형 인성교육의 내용이랄까, 목표랄까, 도덕성 사회성 감성의 함양이 그것인데, 바둑의 덕목에서 이런 요소들을 발굴해 접목시키는 것이다. 바둑교실이나 ‘방과 후 바둑’ 등 바둑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래 전부터 ‘인성바둑’에 대해 고민해 오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 분들의 문제의식과 노하우가 바둑계의 큰 자산이다. 둘째는, 진흥법 이전에도 줄곧 바둑 보급의 핵심으로 거론되고 있던 것인데, 바둑이 과연 각급 학교에 ‘정식 교과목’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결의 첫 단추는 ‘인증’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인성바둑교육’의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인증 받는 것이다. 바둑의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교재도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바둑의 장점이다. 어떤 것들과 경쟁해도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교재가 많다는 것은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제대로 된 교재가 많아야지 조잡하거나 수준이 낮은 교재가 많으면 곤란하다. 검증이 필요하다. 셋째는 시스템 구축이다. 다른 과목들도 지금 사교육업체를 비롯해 단체나 조직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쟁을 지양하자고 인성교육을 부르짖는 마당에 다른 과목들과 경쟁 운운한다면 좀 이상하게 되지만, 이건 선의의 경쟁이니까…^^ 그들과 보조는 맞추어야 한다. 학과목은 물론 예체능 쪽도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발효되면 일단 내년 예산만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를 합해 약 3000억 원 정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인성교육 관련 시장 규모가 몇 년 안에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인성교육, 이게 이제 새삼스럽게 시대의 화두가 되다니. 영수국은 그동안 뭘 했나.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채화와 추상화, 야구와 축구는 그동안 뭘 했나. 이제 바둑이 인성교육을 향해 정식으로 출발한다. 바둑이 간다. 기대가 크다. 기대가 크다는 것은 걱정도 조금은 된다는 것. 무운을 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