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칙 무시 “대주주 뜻대로…” 헐
경남기업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은행 등 채권단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감사원에 의해 드러난 가운데, 금감원 내 충청라인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왼쪽은 최수현 전 금감원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2013년 10월~2014년 2월 약 1년 4개월간 경남기업 워크아웃 관련 업무를 처리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 관련 법령과 원칙 등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금감원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명시된 채권금융기관 이견 조정 원칙을 무시했다.
기업 구조조정 관련 일반원칙 등을 규정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워크아웃 대상기업 지원(출자전환, 추가대출 등)계획은 채권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자율적으로 심의·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채권금융기관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에는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고, ‘금융감독기관 종사자는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지원 여부에 금융감독원이 관여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2013년 10월 29일 경남기업과 관련해 채권금융기관 회의를 소집하는 등 2014년 2월까지 경남기업 워크아웃 관련 업무에 깊이 개입했다. 또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출자전환을 할 때, 해당 기업의 주가가 발행가보다 낮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경우에는 부실책임이 있는 대주주에 대해 무상감자를 먼저 하는 것이 일반원칙이다. 금감원은 이런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금융FAQ’와 금감원이 발간한 서적 등을 통해 스스로 공개하고 있다. 실제로 경남기업 실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지난 2013년 12월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출자전환이 불가피하고, 대주주 무상감자(2.3:1)가 필요하다고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무상감자 후 출자전환을 추진하기로 결정, 금감원에 이를 보고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실무를 맡은 금감원 A 팀장은 2014년 1월 9일, 신한은행 관계자들을 금감원으로 불렀다. 그는 신한은행에 “대주주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는 뜻밖의 요구를 했다. A 팀장은 이후에도 수시로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신한은행을 압박했다.
A 팀장이 신한은행과 접촉한 지 나흘 뒤인 2014년 1월 13일, 이번에는 국장급 인사가 다시 신한은행 사람들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그는 “회사와 대주주의 입장을 잘 반영해 처리해달라”며 압박을 가했다. 사실상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으로 성완종 전 회장을 지원하도록 한 인물은 김진수 당시 금감원 기업금융구조개선 국장이었다.
김 전 국장의 ‘호출’이 있은 지 일주일 후에 열린 채권단 협의회에 신한은행은 무상감자 없이 출자전환만 하는 내용의 안건을 상정했다. 신한은행의 제안에 다른 채권금융기관들은 “부실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은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모 금융사는 신한은행을 포함한 53개 채권금융기관에 이메일을 보내 안건 재논의와 수정 등을 요구했고, 다른 금융사는 “아무런 경영정상화 노력을 하지 않는 대주주에게 사전적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은 특혜”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금감원 A 팀장과 김진수 당시 국장은 역할을 나눠 적극적으로 다시 개입했다. A 팀장은 이의를 제기하는 채권금융기관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반대해서 될 문제가 아니니 신속히 동의하라”고 요구했다. 김 전 국장은 반대하는 은행 부행장들을 자신의 방으로 부른 뒤 “당신네 은행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니 안건에 동의하라”고 요구하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결국 2014년 3월 경남기업 워크아웃은 무상감자 없이 출자전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1000억 원의 은행자금이 투입됐다. 이로 인해 경남기업 채권단은 11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
의심이 가는 대목은 A 팀장과 김 전 국장이 이렇듯 불투명한 업무처리를 하면서 부원장급 이상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금감원의 상급기관이라 할 수 있는 금융위원회와는 협의조차 하지 않았고 일을 처리한 것으로 나타나 의문을 남기고 있다.
금융권 등에서는 이와 관련해 금감원의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윗선의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감사원 국장급 인사는 “김 전 국장과 A 팀장은 ‘경남기업이 부실화돼 법정관리가 되면 협력기업 등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논리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채권단을 설득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에 넘긴 자료와 관련해서는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언급을 피했다.
우선 당시 금감원은 충남 예산 출신인 최수현 원장이 이끌고 있었다. 최 전 원장은 성 전 회장이 만든 지역모임인 ‘충청포럼’에서 활동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데, 2011년 3월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된 뒤부터 충청권 인사를 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특히 경남기업과 관련해서는 의사결정라인에 유독 충청권 인사들이 눈에 띈다. 최수현 당시 원장 바로 밑에는 충북 충주 출신인 조영제 부원장이 은행·중소서민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은행담당 부원장은 이름 그대로 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말 한마디에 은행장의 진퇴 여부가 좌우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 은행권의 정설이다.
조 전 부원장은 자신이 충청포럼 멤버가 아니며, 경남기업 워크아웃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단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등 은행권 전체가 시끄러웠던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의 문제점 자체를 조 전 부원장이 몰랐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은행의 관리감독업무를 총괄하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최소한 진행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금감원 안팎의 시각이다.
기업금융개선국을 이끌면서 채권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압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난 김진수 당시 국장 역시 충남 논산 출신이다. 국장급 가운데 맏형격인 선임국장이던 그는 성완종 전 회장이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할 때 국회에서 성 전 회장을 직접 만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다이어리에는 2013년 9월 3일 김진수 국장과의 면담 일정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국장은 이후 부원장보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올해 1월 최수현 전 원장이 물러나고 진웅섭 금감원장이 취임하자 돌연 사퇴해 의문을 낳기도 했다. 그는 경남기업과 관련해 “워크아웃 등 주요 결정은 채권단이 한 일로 금감원은 기업금융개선 과정의 일환으로 개입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 김 전 국장을 보필하며 실무를 맡았던 A 팀장 역시 충청도 출신인 것으로 확인되는 등 경남기업 워크아웃과 관련해 은행권에 압력을 가한 의혹이 일던 당시 금감원은 원장-부원장-국장-팀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모두 충청도 인사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이 성완종 회장과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부당한 일에 연루됐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경남기업을 살리기 위해 ‘충청포럼’ 멤버 등 금융권 인사들을 집중 접촉했다는 점, 그리고 당시 그가 금융감독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이었다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은 의혹을 밝히는 것은 감사원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검찰의 몫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