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 왜 거기서 패션쇼를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9월 8일 베트남 하노이 랜드마크72 빌딩에서 열린 한복-아오자이 패션쇼에 모델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제공=청와대
우선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다이어리에는 그가 금융권 인사들과 연쇄적으로 접촉했음을 암시하는 일정이 다수 등장한다. 2013년 9월 3일에는 김진수 당시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구조개선 국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9월 12일과 13일에는 채권은행장인 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을 만나는 일정이 기재돼 있다.
성 회장이 이들과 접촉하는 동안 정부쪽에서는 재계를 잠시 술렁이게 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9월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79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장해남 경남기업 사장을 포함시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강호문 삼성그룹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김종식 LG전자 사장 등 쟁쟁한 대기업CEO들과 경제사절단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중견기업에 불과한 데다 자금난까지 겪고 있던 경남기업이 포함된 것도 이변이었지만, 장해남 사장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금융권 인사들의 면면은 더욱 관심을 모았다. 당시 사절단에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주채권은행인 서진원 신한은행장, 최대 채권은행인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국내에서 성완종 회장이 뛰는 동안 장해남 사장은 해외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금융권 핵심인물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가졌던 셈이다.
베트남은 경남기업 자금난의 주요원인으로 꼽히는 ‘랜드마크72’가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 건물에서 열린 패션쇼에 모델로 등장해 워킹까지 선보여 화제를 뿌렸다. 아무나 참석할 수 없는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경남기업이 포함되고,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던 민간기업 건물에 대통령이 직접 패션 모델로 나선 점, 그리고 자금난 해결에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권 CEO들이 일주일 가까이 함께 일정을 보냈다는 사실 등은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의미가 커 보인다.
순방이 끝난 지 얼마 후인 2013년 10월, 경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작업에 돌입했다. 채권단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금감원의 지휘 아래 은행권은 100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