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신기남, 명계남 (왼쪽부터) | ||
이번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4월2일)은 ‘빅 3’로 불리는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대권주자들의 참여가 원천봉쇄된 탓에서인지 레이스 시작 전 부터 ‘반쪽짜리’가 될 것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여기에 1월 말까지만 해도 당내 중진그룹의 ‘담합’에 따라 친노 직계그룹의 좌장인 문희상 의원의 대세론이 형성되면서 흥미는 더 더욱 감퇴되어 가는 양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달 들어 흥행에 대한 안팎의 우려와 달리 계파-선수(選數)-원내외 불문하고 ‘출마 러시’가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당 의장을 포함해 5명의 상임중앙위원(여성 1명 반드시 포함)을 선출하는 지도부 경선에 20명 가까운 인사들이 출마의사를 내비치며 ‘그들만의 리그(League)’를 형성하면서다. 한 계파에서 많게는 4명이 나설 만큼 후보가 난립하면서 추천단계에서 부터 예비선거, 본선에 이르는 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그야말로 ‘안갯속’이 되어 버렸다.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출마의향을 밝힌 인사들은 알려진 것만 18명선.
계파별로 면면을 보면 ▲친노 직계=문희상 한명숙 염동연 김혁규 의원 ▲구 당권파=신기남 김희선 박영선 의원 ▲국민정치연구회(재야파)=장영달 의원 ▲참여정치연구회(개혁당 그룹)=유시민 김원웅 의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유재건 조배숙 의원 ▲국민참여연대=명계남 의장 ▲재선그룹=송영길 김영춘 의원 ▲충청권=홍재형 의원 ▲초선그룹=임종인 의원 등이다.
당내에선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기간당원 모집 이후 처음 치뤄지는 이번 전대의 새 풍속도”라는 진단이 나온다. 한 당직자는 “기간당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대의원들의 결정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판단에서 계파 내 중론에 아랑곳없이 독자 출마를 고려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며 “후보가 너무 많다 보니 추천 단계부터 과열양상을 보여 선거관리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같은 계파 내에서 중량급 후보들이 나란히 출마해 각축이 벌어지는가 하면 계파 내에서 경쟁자가 없어 집중지원을 받는 정반대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끈다.
친노 직계그룹의 경우 당내에서 “당 의장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희상 한명숙 김혁규 의원과 광주-전남지역에 확고한 기반을 가진 염동연 의원이 ‘각개약진’ 태세다. 참정연도 출마자 3인(유시민-김원웅-김두관)이 모두 경쟁력을 갖췄지만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자칫하단 한 명도 지도부에 진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 국정연의 장영달 의원은 다른 후보들로부터 “출마운(運)이 따른다”는 부러움 섞인 눈길을 받고 있다. 장 의원은 당초 원내대표 경선에 마음을 뒀다가 뒤늦게 ‘U턴’한 데다, 리더인 김근태 복지부 장관 등이 임채정 의장을 당 의장 후보로 내세우려 했지만 본인이 고사하면서 계파 내에선 ‘단독 질주’하는 상황이다.
출마자들에 대한 ‘가지치기’는 계파 내 교통정리가 안될 경우 일차적으로 후보 추천단계에서 이뤄지게 된다.
현행 열린우리당 당헌-당규는 “상임중앙위원 선거의 후보자는 중앙위원 5인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제33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재적 중앙위원이 66명이 불과하고, 이들이 지도부 경선 후보를 중복추천할 수 없는 관계로 추천받을 수 있는 후보가 최대 13명밖에 안된다는 점. 사정이 이런 만큼 중앙위원 추천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은 설 연휴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예비선거(3월10일)도 판도를 가를 주요 변수. 당헌-당규 제33조 2항은 “상임중앙위원 선거 후보자가 8인을 초과할 경우엔 중앙위원과 국회의원, 시도당 선출직-여성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서 후보자 중 8인을 다득표순으로 선출하되, 여성 2인 이상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백80여 선거인단이 투표(3인 연기명 방식)를 통해 본선에 진출할 8명을 가리는 것이다.
당내에선 대체적으로 예비선거 단계부터 계파-후보간 합종연횡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계파별로 복수 후보가 나설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3인 1조’의 틀내에서 서로 상대방의 득표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복잡한 ‘짝짓기’가 물밑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예상이다. 만약 13명에서 8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순위 내에 들지 못할 경우엔 정치적으로 크나큰 타격을 입을 확률이 높은 만큼, 선거 전에 ‘세 불리’를 감지한 후보들은 아예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 장영달, 김원웅 | ||
같은 시기 김 전 장관과 동반 예비선거 낙선의 아픔을 맛봤던 김원웅 의원도 <시사저널> 최근호가 당원협의회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상임중앙위원 적합 인물’ 1위를 차지했지만 전력을 감안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절차가 이처럼 복잡다단한 만큼 각 계파들은 예비선거 전에 내부 교통정리는 가급적 끝낸다는 방침이다. 우선 참정연은 오는 2월20일 전국 이사회를 열어 후보 단일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달에 전대 대의원을 뽑으면 판세 분석을 통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복수 후보를 내고, 안되겠다고 여겨지면 이사회에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원 전원이 전대 선출직에 도전키로 한 국민참여연대도 대의원의 윤곽이 드러나는 대로 명계남 의장의 당권 도전을 포함해 전대 대책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3인까지 선택할 수 있는 예비선거 투표방식을 감안할 때 상당수 선거인단을 확보한 국참연이 명 의장 외에 두 명의 지지 후보로 누구를 선택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대 당일 경선은 계파별 합종연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와, 한 계파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일단 여성 2명 이상을 포함해 8명의 후보가 나서는 본선에선 어느 계파도 자체 세력만으론 당선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 특히 1만3천여 명 대의원이 각각 후보 2명에 순위 구분 없이 투표하는 ‘2인 연기명 방식’상 연대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지적이다.
당내에선 당헌·당규에 의거, 득표순위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1명을 당선시키도록 한 여성 몫을 뺄 경우 4명인 상임중앙위원은 결국 주요 계파를 대표하는 후보들이 한 석씩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친노 직계그룹의 경우 한명숙 의원이 여성 몫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다른 한 명의 상임중앙위원을 더 배출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1장의 티켓의 주인이 누가 될지를 두고 현재로선 문희상 의원이 다소 앞선다는 평가지만 각각 영호남에 확실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는 김혁규, 염동연 의원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합종연횡 구도로 점쳐지고 있는 친노 직계그룹-구 당권파-국참연, 국정연-참정연 간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우선 전자의 조합에선 구 당권파가 득표 1위가 차지하게 되어 있는 당 의장직에 항간의 예상대로 친노 직계 후보를 밀 것인가가 변수다. 자체 당 의장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구 당권파 내 다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신기남 전 의장이 당권 도전을 선언한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변수다.
당내 일각에선 신 전 의장이 예비선거와 본선에서 예상외로 돌풍을 일으켜 구 당권파의 조직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당 의장직에 대한 양 계파 간 ‘묵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가설도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친노 직계가 국참연과도 상당부분 경선대책을 조율해 온 만큼 구 당권파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 해도 ‘3자 연대’가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많다. 같은 맥락에서 국참연측 후보로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는 명 의장의 지도부 진입 확률도 그만큼 높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당 전반에 걸쳐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용노선에 밀려 수세에 밀리고 있는 국정연과 참정연은 연대 확률이 매우 높다는 평가다. 국정연은 장영달 의원이 단독 후보로 나선 만큼 ‘1인 2표’ 중 한 표를 참정연측 후보에 배려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연측 한 의원은 “기간당원 모집에서 강세를 보였던 참정연과 전략적 제휴가 이뤄질 경우 우리측 단일후보인 장 의원의 당 의장 당선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장영달 의장’에 참정연측도 상임중앙위원을 내고, 재야 출신에 국정연 멤버인 한명숙 의원이 여성 몫 상임중앙위원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