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직도 사서 마시니? 난 만들어 마신다!
최근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전문 펍 애용을 넘어 아예 집에 작은 양조장을 차려 직접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출처=수제맥주 전문점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페이스북
이태원 수제 맥주 전문 펍 ‘탈’을 운영하는 김욱연 씨(46)는 맥만동에서도 ‘대선배’에 속한다. 김 씨는 “15년 전부터 수제 맥주에 빠져 동호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그때는 수제 맥주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라 개인들이 동호회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다. 같이 맥주를 만들고 시음회를 하면서 공부하는 식이었다. 소수로 시작한 동호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회원들이 늘어가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말했다.
시작은 취미였으나 맥주에 푹 빠져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생겨났다. 김 씨 역시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하다가 2002년 사표를 던진 뒤 본격적으로 수제 맥주를 생업으로 삼았다. 김 씨는 “연간 150회 이상 맥주를 만들며 다양한 레시피를 접했다. 맥주 외에도 와인, 막걸리 등 다양한 술을 만들었는데 가장 까다로운 게 맥주였다. 그만큼 매력이 많다. 이제 곧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수제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처음 수제 맥주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생소한 분야였지만 이젠 동호회 후배들까지 펍을 여는 등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힘든 점도 있지만 소비자들은 앞으로 더 훌륭한 수제 맥주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가양조공방 소마’ 내부 모습.
펍만큼이나 인기를 끄는 곳이 있으니 바로 수제 맥주 공방이다. 자가양조공방 소마(SOMA)를 운영하는 김성준 씨(38)는 “이곳에서는 맥주를 만드는 공간과 각종 도구를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기초적인 양조방법을 교육한다. 맥주뿐 아니라 전통주, 와인 등 다양한 주류를 다룬다. 20대 대학생부터 60대 후반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찾는다. 호기심이나 취미생활로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펍을 열기 위해 수업을 받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방에서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홈키트를 이용해 속성으로 수제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30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별도의 교육은 없으며 재료비를 포함해 10만 원의 비용이 든다. 맥아를 직접 끓여 만드는 방식은 4~7시간이 필요한데 공방 이용료 및 재료비와 별도로 시간당 1만 원의 교육비가 추가되는 차이가 있다.
공방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후에는 집에서 모든 과정을 거쳐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독학을 통해 가정에서 맥주를 만드는 열혈 마니아들도 적지 않다. 아내를 위해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옥진호 씨(35)도 신혼집 한구석에 작은 양조장을 차린 상태다.
독일에서 오래 생활한 아내가 그때 마시던 맥주 맛을 그리워해 직접 만들기로 했다는 옥 씨. 처음엔 초보자들을 위한 맥주 만들기 세트를 구입하고 일부 재료만 독일 해외 직구를 통해 충당했단다. 과연 그 맛이 날까 아내의 걱정 속에서 만들어진 맥주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고. 그 뒤로 아내뿐 아니라 옥 씨까지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져들어 이젠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옥 씨는 “취미로 시작한 수제 맥주 만들기지만 이제는 나의 꿈이 됐다. 수제 맥주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펍을 차리는 게 목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맥주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맥주 맛을 알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옥 씨처럼 가정에서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이에 필요한 도구를 파는 업계도 성장하고 있다. 초보를 위한 ‘수제 맥주 홈키트’부터 다양한 맥주원액, 가정용 거품기까지 판매한다.
수제 맥주 재료 쇼핑몰 ‘미스터비어’를 운영하고 있는 박창석 씨(38)는 “과거엔 구매자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요즘은 여성 구매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맥주는 소독만 잘 해주면 초보자들도 크게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여유를 두고 숙성을 잘 시키면 집에서도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수제 맥주를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