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반발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으로 확대되며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친 노무현’과 ‘반 노무현’ 세력이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전선을 따라 각 세력들의 집단적 움직임들을 추적했다.
1. 법조계
우선 임기 중반을 맞은 노 대통령이 검찰 장악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란 점에서 4월 임기가 만료되는 송 총장 후임 인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여권수뇌부와 여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주요 수사 정보를 갖고 있는 검찰 수뇌부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헌법재판소(헌재)와 대법원 역시 노 대통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온 세력으로 볼 수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은 노 대통령의 통치력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헌재 판결 직후 대법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장인이 빨치산 출신”이라고 발언해 노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이원범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검찰과 법원에 비해 그나마 노 대통령에 우호적이던 재야 법조계에도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수장학회 이사인 천기흥 변호사가 대한변협 차기 회장에 사실상 확정되면서 현 정부에 우호적인 현 변협 집행부에 지속적으로 비판을 해온 천 변호사 중심의 재야 세력 재편마저 전망된다.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가 주도하는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시변) 출범 역시 재야 법조계 내에서 노 대통령에 비판적 여론이 조직적으로 형성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 대통령에 ‘우군’ 노릇을 해온 재야 법조계 역시 ‘친노’와 ‘반노’로 사실상 갈라지고 있는 셈이다.
2. 정계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노 대통령에 대해 ‘가장 많은 정적을 지닌 여권 후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회창 후보 중심의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단협’이 결성돼 노 후보 밀어내기가 시도됐으며 이는 훗날 민주당 분당의 빌미가 됐다.
노 대통령은 사상 초유로 국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지만 탄핵 중심세력 중 하나였던 민주당에게 손을 벌려야 할 처지가 됐다. 4월 재보선에서 과반 의석 수성이 어려워 보이는 탓에 민주당을 향한 구애가 시도되고 있지만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연정 고려할 수 있다”고 받아치는 등 가시밭길이 예고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의 대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노 대통령 개인을 향한 비판의 화살이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차기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현 정부를 비판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권 내부 대권 경쟁이 가열되면 레임덕과 맞물려 ‘노무현 밟고 가기’가 경쟁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3. 보수 여론
지난해 10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10만 군중이 운집해 ‘국보법 사수’시위를 벌였다.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여권 주도 하에 국보법 폐지 공론이 확산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보수단체들의 궐기에 무려 시민 10만 명이 화답한 셈이다. 보수단체들은 앞서 시청 앞 광장에서 대대적인 수도이전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얼마 전 헌재가 호주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여성단체들과 정치권은 환영의 반응을 보였지만 유림 인사들은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각 지역 향교와 노인 단체 등은 “가족제도의 전통을 무시하고 시류를 의식해 정치적 결정을 한 것”이라며 일단 헌재를 겨냥했지만 이는 차후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17대 총선 과정에서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홍역을 크게 치른 여권에게 장년층 반발 심리의 집결은 지방선거나 대선 같은 굵직한 선거에서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수 있다.
4. 색깔론
호주제폐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예비역대령연합회장)는 얼마 전 ‘호주제 폐지는 북한의 가족제도를 따라가는 것’이라며 ‘김정일의 전위대 한총련이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다소 ‘생뚱맞은’ 색깔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 정부의 행보에 대해 ‘색깔론’만큼 효과적인 장애물도 없다는 지적이다. 운동권 출신 여권 386 인사들의 이념적 성향을 겨냥한 ‘뉴라이트’ 운동도 한나라당과의 연계를 통해 여권을 압박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3·1절에는 여운형 등 좌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이 예정돼 있다. 일각에선 여운형에게 1급 서훈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보수단체는 서훈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자유민주민족회의(대표상임의장 이철승)는 성명 발표를 통해 ‘정부가 몽양(여운형)에 대해 건국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의한 것은 박헌영과 김일성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자는 논리와 같다’며 훈장 추서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북핵 관련 6자회담 재개 시도 등 북한과의 평화·협력적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최근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이 문을 열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우리 내부에서 ‘북한’ ‘좌파’라면 혀를 내두르는 세력을 아우르는 것 역시 현 정부가 감당해내야 할 몫인 셈이다.
5. 환경단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의 환경을 수호하기 위한 지율 스님의 1백일 단식은 결국 정부의 환경영향 공동조사 약속을 이끌어내며 일단락됐다. 환경파괴를 막으려는 종교인의 노력이 결국 정부 시책마저 바꾼 셈이다. 이에 대해 해당 지자체인 울산시와 시의회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편향된 주장이나 집단과 지역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환경운동이 국책사업을 방해할 정도가 돼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집권 초기부터 새만금 공사 논란을 통해 환경문제로 인한 홍역을 앓아 왔다. 2003년 법원이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결정’ 처분을 내리며 당시 김영진 농림부장관이 사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 공사에 대해 ‘취소하거나 변경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국책사업의 권위가 다시 한번 땅에 떨어지게 됐다. 이밖에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원전수거물관리센터, 경인운하 건설사업 등은 일찍이 정부계획이 세워진 상태에서 아직도 착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현 정부로선 국책사업의 원활한 진행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다.
6 문화예술계
정치적 문제와 비교적 무관해 보였던 문화·예술계 내에도 현 정부 시책에 대한 찬반양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이 광복절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글씨를 내리겠다고 나선 것이 단초가 됐다.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 이미지를 결부시켜 박 대표를 폄훼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도 ‘광화문 현판을 바꾸겠다면서 박정희를 지우려 한다는 의심만 증폭시킨다’고 비판했다.
문화계에서는 조선시대 건물을 최대한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음모적 시각이 개진되는 것에 대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27일 1월27일 한글학회와 외솔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한글관련 단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날 궐기대회를 열고 한글 현판의 보존을 주장했다. 정부 시책에 대해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공개적·조직적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내용이 일부 삭제된 것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장면 논란에 대해 영화 제작사측은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일축하지만 이를 현 정부의 입장을 측면지원하는 것으로 보는 보수적 시각이 만만치 않다.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반노’바람이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