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돌 쳐내자” 박힌 돌들 모였다
원로그룹과 친박 의원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초선의 한 친박 의원은 지난 5월 1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 현안에 대한 물음에 다짜고짜 분통부터 터뜨렸다. 그는 “정권 출범 후 우리는 최대한 지원 사격을 했다. 솔직히 왜 그랬겠느냐. 친박 수장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해야만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가 수월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전혀 우리를 끌고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정권 출범 후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김기춘 전 실장 말만 들었다. 친박은 그저 지시만 받고 움직이는 행동대원일 뿐이었다. 4월 재·보궐 선거 전후로는 우리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김무성 대표 쪽과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 않느냐. 친박 내에서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김 대표에게 줄을 섰어야 한다’는 후회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의 이러한 뒤숭숭한 분위기는 박 대통령 주변을 향한 공세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그동안 축적돼 있던 불만들이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인의 장막’으로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두고 내년 총선과 연결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내년 총선에서 임기 4년차 박 대통령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친박계가 품고 있는 ‘공천 학살’ 우려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신 김무성 대표가 공천권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로선 김 대표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참모 3인방 등을 겨누는 것은 단순한 불만 표현이 아닌 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친박 꼬리표를 떼는 동시에 ‘공’을 세우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개인비리 의혹 등 친박의 타깃이 된 우병우 민정수석.
그러나 정치권에선 우 수석이 친박 ‘타깃’이 됐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굴러온 돌’ 우 수석이 청와대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하자 ‘박힌 돌’ 친박계의 견제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친박 인사들이 우 수석에게 ‘민원’을 넣었다가 거절당하는 과정에서 말썽이 났다는 말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우 수석 재산 관련 내용이 돌기 시작할 무렵 친박 인사들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책임을 지고 우 수석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박계가 청와대 핵심 수석의 용퇴론을 꺼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우 수석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해프닝으로만 볼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는 우 수석뿐 아니라 박 대통령 최측근 참모 3인방과 이병기 비서실장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정치권에선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이 실장의 여러 의혹이 오르내린 바 있다. 청와대로선 여권 내부 ‘빨대’에 의해 민감한 파일들이 줄줄 새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 역시 “확인해 보니 주로 여권에서, 그것도 친박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더라. 대통령을 레임덕으로 몰아넣었던 임기 4년차 비리가 대부분 여권 내부 파워게임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심각한 문제”라고 귀띔했다.
친박 의원들뿐 아니라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외곽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던 원로 그룹 쪽에서도 이러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선 3인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선 캠프에 몸 담았던 한 원로 인사는 “직책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아예 (박 대통령과의) 통로를 차단해버렸다. 김기춘 전 실장에게도 섭섭한 게 많지만 3인방은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옛날엔 우리 얼굴 쳐다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우리도 이 정돈데 친박계 의원들한텐 오죽 하겠느냐. 의원들이 돌아선 것도 이해가 간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앞서의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박 대통령을 흔들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제 겨우 일 좀 해보겠다고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분들이라면 정권 성공을 위해서도 협조해야 할 것”이라면서 “자체적으로 정보 유출 과정에 대한 확인에 나선 상태고, 향후 (친박계에 대한) 기강 바로잡기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