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 결국 ‘충청라인 수장’에 향하나
신한은행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왼쪽은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 이종현 기자
우리나라 금융의 심장부격인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이 압수수색을 받던 지난 7일, 검찰은 4곳에서 추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성완종 전 회장 소유였던 경남기업에 대출을 해주도록 신한은행을 압박한 의혹을 받는 김진수 전 금감원 부원장보의 자택, 그리고 대출을 해준 당사자인 신한은행 본점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이들 두 곳은 사건의 주인공들인 만큼 압수수색은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김진수 전 부원장보의 경우 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눈길을 끈 것은 나머지 두 곳이다. 검찰은 이날 김진수 전 부원장보의 직속상관이자 은행담당이었던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과 신한은행에서 기업여신 업무를 취급했던 전직 부행장의 집에 수사관들을 보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들의 개인물품과 이메일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기업 의혹과 관련해 그간 간간이 이름이 거론되는 수준일 뿐 수사대상에는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던 두 사람의 치부를 뒤진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금융권과 법조계의 시각이다.
금융권은 검찰의 칼끝이 결국 최수현 전 금감원장을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최 아무개 팀장부터 김 전 부원장보, 조 전 부원장을 거쳐 최 전 원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금감원 충청라인’의 수장이자, 경남기업 대출건의 최종의사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다. 최수현 전 원장이 경남기업 대출건에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어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사건의 핵심인물인 최 아무개 팀장이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윗선’이 누구까지인지가 금감원의 앞날을 결정짓는 최대변수로 떠올랐다.
금융권은 이번 사건이 김진수 전 부원장보 선에서 끝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전 팀장뿐 아니라 금감원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은행권 고위층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최고위층에 따르면 검찰로부터 참고인 등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받은 은행 고위직 임원은 8명에 이른다. 경남기업 채권은행 전체가 망라된 셈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진술을 끝냈고, 상당한 수위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 고위임원들은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영제 전 부원장과 최수현 전 금감원장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신한은행 본점.
서로 눈치만 보던 금융권이 조금씩 말문을 열면서 불똥은 금감원의 ‘윗선’뿐 아니라 아래쪽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은행 고위관계자들의 입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금감원의 ‘갑질’ 행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최고위층들이 전하는 금감원 임직원들의 마구잡이 압력과 안하무인식 언행은 ‘경제 검찰’이라는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내용들이다.
우선 A 은행 고위임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다른 채권은행들이 거절한 대출금액까지 이 은행이 모두 떠안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은행들이 돈을 떼일까 우려해 대출을 망설이자 특정은행을 지목해 나머지 금액을 모두 대출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A 은행 임원은 “금감원의 무리한 요구에 은행들이 망설이자 ‘나머지 은행들 대출금액까지 퉁쳐서 여기서(A 은행) 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가 어지간히 만만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라리 옷을 벗겠다”며 금감원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예상외의 저항이 부담스러웠던지 금감원은 A 은행에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이 임원은 전했다.
끝내 금감원의 ‘갑질’에 희생양이 된 신한은행에 관한 얘기도 흘러나온다. B 은행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경우 금감원이 개입하기 전에 경남기업 대출의 문제점을 감지하고 각서를 받아뒀다. 붉은색 사인펜으로 작성됐다는 이 각서는 “더 이상의 대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막강한 금융 권력을 앞세운 금감원의 밀어붙이기에 신한은행은 결국 굴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경남기업의 감자 없는 출자전환을 주도하고 수백억 원대 대출도 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의 부적절한 행태가 일부 간부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증언도 나왔다. C 은행 고위임원에 따르면 금감원에서 대출압박을 가한 인물들은 팀장이나 국장급 이상 간부들뿐만이 아니다. 모 여직원의 경우 아버지 연배인 은행 고위층들을 마치 아랫사람 다루듯 하는 거만함으로 분노를 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A 은행 임원은 “딸보다 어린 사람이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말투로 툭하면 오라가라하더라. 그만둘 각오하고 훈계를 할까 하다 회사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겨우 참았다”고 전했다. 이 여직원은 현재 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