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칠암리 고분 발굴조사 결과 전체 길이 55m...임나일본부설에 어떤 영향(?)
전북 고창군 ‘고창 칠암리 고분’에 관한 축조시기 및 매장시설 구조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학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26일 고창군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9일 동안 대한문화재연구원(원장 이영철)에 의뢰해 ‘고창 칠암리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5세기 후반에 축조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세번째로 규모가 큰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매장시설로 확인됐다는 것. <고창군 제공>
[일요신문] 전북 고창군 ‘고창 칠암리 고분’에 관한 축조시기 및 매장시설 구조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학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26일 고창군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9일 동안 대한문화재연구원(원장 이영철)에 의뢰해 ‘고창 칠암리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5세기 후반에 축조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세번째로 규모가 큰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매장시설로 확인됐다는 것.
‘고창 칠암리 고분’은 6세기 전반에 축조된 전방후원(前方後圓)형 고분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축조시기에 대한 논란 끝에 최근에는 6세기 중반에 집중 조성됐다는 점에 학계가 대체로 합의한 상황에서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새롭게 밝혀져 우리나라 고대사는 물론 고고학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란 앞쪽의 네모난 봉분과 뒤쪽의 둥근 봉분이 결합된 형태의 독특한 분묘양식으로, 특히 일본의 고분시대인 4세기부터 6세기에 성행했다.
국내에서 확인·보고된 전방후원형 고분 13기로, 발굴조사가 이뤄진 광주 월계동, 함평 신덕, 해남 용두리 고분, 영암 태간리고분 등은 횡혈식(7기)과 수혈식(1기) 구조이다.
반면에 칠암리 고분은 유일하게 관형(石棺形) 구조로 만들어진 매장시설로 확인됐다.
아울러 칠암리 고분의 훼손된 석실 내부에서는 백제계 기대(器臺)와 개배를 비롯해, 일본 하지키(土師器) 고배와 원통형토기가 출토됐으며, 마구(馬具) 부속품인 운주(雲珠)와 철제편 등도 수습됐다.
칠암리 고분의 전체길이는 55m 내외로 우리나라 전방후원형 고분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규모다.
고분 조사과정에서 원부(圓部) 북쪽에 이중으로 쌓은 주제(周堤) 흔적도 확인되었는데, 이는 국내에서 유일한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분은 분구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즙석(葺石)시설을 했으며, 분구와 석실을 동시에 축조한 내용이 확인됐다.
전방후원분이 한반도, 특히 남부지방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실재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조사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분 출토 유물. <고창군 제공>
또 고창 칠암리에는 그동안 1기의 전방후원형 고분이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조사과정에서 3기의 전방후원형 고분이 존재한 사실 또한 새롭게 밝혀져,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 자료는 우리나라 전방후원형 고분의 성격과 출현 시기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한․일 고분문화의 비교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방후원분이 한반도, 특히 남부지방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실재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말끔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조사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것으로 일본 문화청 등은 고대 유물을 소개하면서 이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