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임기중 두 번 사임 결심”
저자가 참여정부 청와대의 제1부속실장이었던 만큼 참여정부 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역임한 문재인 새정치연합 당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6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환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문 대표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대신 영남 지역에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정치를 그만두기 어려우니 관리를 해주세요. 인연이 그렇게 맺어진 걸 어떡합니까?”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정치 참여를 적극 권했다. 지난 2006년 노 전 대통령은 “김경수(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진주출신)는 진주 가서 출마해라. 이미지가 좋지 않나? 문용욱(대통령 제1부속실 실장)은 곰처럼 음숭한 데가 있으니 나하고 봉하로 내려가고. 이호철(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자네는 나랑 내려가서 내셔널트러스트를 하다가 부산에 출마하든지”라고 말했다.
# 반기문 총장과의 일화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관한 일화도 등장한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UN사무총장 후보다 보니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응할 때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외교 현안의 최대 문제였던 일본과의 역사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해서 강력 대응할 때마다 후보였던 반 총장이 마음에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장관직을 떼어주는 것이 UN사무총장 선거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입장은 달랐다. 반 총장은 현직을 유지해야 유리하다며 경쟁 후보의 예를 들었다. 반 총장이 “다른 후보의 경우는 나라에서 밀어주려고 (외교부 장관이 아닌) 부총리로 올려주었더니 지지도가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특보 같은 자리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당한 한일 외교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을 하려 했지만 반 총장의 UN사무총장 선거를 위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 사임을 생각하다
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사임을 두 번 생각했다. 첫 번째는 임기 시작 약 반년 만인 지난 2003년 10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자금 수수관련 일이 불거졌을 때였다. 참모진의 만류도 뿌리치고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사임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재신임 제안’을 노무현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신임 제안은 탄핵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지나며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는 지난 2006년 11월에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준비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의원들이 통합신당으로 빠져나가고 잔류 의원이 50여 명 정도 될 경우에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 이를 위해 과도내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총리는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와 전윤철 감사원장 가운데 누가 적당할지 판단해라”라고 지시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전에 임기 5년이 길다고 말한 적 있지요. 그때부터 임기를 4년만 채우고 마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아 그리하지 못했지요. 당 때문에라도 내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식물대통령입니다. 이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라며 “4년 임기가 차는 날 즈음해서 사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임기를 4년으로 줄이면 다음 대통령은 90일 내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시기가 엇비슷해집니다. 내가 그렇게 타이밍을 조절하면 됩니다. 여당도 없는 대통령이 대통령 한다고 버티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1년이라는 세월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려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만류했다. 이 실장은 “설사 당이 깨져 50명, 70명이 되더라도 그 사람들과 함께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4년으로 충분하다. 남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속되는 간청에 노 전 대통령은 일부 의견을 받아들였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의) 협상용으로 이야기하되, 협상이 안 되면 사임은 사실이 되는 것으로 합시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APEC 정상회담 일정을 위한 순방 일정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은 더 확실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오는 동안 마음이 변했다. 당 사람들과 협의해서 조건부로 추진하는 것이 싫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6개월이면 충분하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역사의 패배다. 우리 참모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병완 비서실장도 간청했다. “우리에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참모들의 반대와 만류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노무현 스스로에 대한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풍운아보다는 반듯한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한명숙 전 총리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사진제공=청와대
다음 대통령에 대한 바람을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은 풍운아가 아니라 반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이런 바람으로 노 전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를 차기 대권주자로 눈여겨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스트라이커는 나까지 하면 됐고, 단호하되 외유내강형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전 장관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은 “활을 쏴보니 활대와 시위가 화살을 담아내는 탄력을 갖고 있더라. 활처럼 담아주어야 한다. 사람들과 관계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노-비노 갈등으로 서로를 담아주지 못하는 새정치연합이 새겨들을 말처럼 느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