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살리는 착한 기업·착한 제품 스고이~
위부터 빈곤국가에서 장식품을 공정하게 수입하는 보석브랜드 하스나, 도요타의 친환경차 ‘프리우스’, 코카콜라의 초경량 페트병 생수 ‘이로하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백화점에서는 폐기물로 만든 가방이 3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몰려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윤리적 소비 열풍이 한창인 일본 경제에 과연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지 <주간겐다이> 보도를 통해 따라가 본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백화점은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세탄백화점 본점이다. 특히 이곳은 고객들의 잠재적인 욕구를 파악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쇼핑 공간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난 5월 11일부터 이 백화점에 사뭇 다른 분위기의 특설매장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글로벌 녹색’ 공간이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사회 공헌으로 이어지는 물건들을 모아 판매한다는 것이 글로벌 녹색 매장의 목적. 이를테면 무농약 정책을 철저히 지켜 생산한 면양말이나 개발도상국과의 공정무역을 통해 만든 핸드메이드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다. 이세탄백화점 홍보담당자는 “에시컬 콘셉트 매장으로 고객들에게 패션을 통해 사회공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에시컬(Ethical)’이란 단어가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에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원래 에시컬은 윤리적, 도덕적이라는 뜻이나 경제학에서는 ‘생산자의 노동조건이나 지구환경을 생각해 물건을 사는 소비 트렌드’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소비가 오직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소비를 통해 ‘사람과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동기에서 출발하는 그야말로 착한 소비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덧붙여 에시컬 개념이 처음 생겨난 영국의 경우 관련 시장규모가 470억 파운드(약 80조 원)를 넘어 해마다 증가 추세라고 하니, 어쩌면 이곳에는 거대한 비즈니스 찬스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윤리적인 상품으로 성공한 사례는 일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도요타의 글로벌 히트상품인 ‘프리우스’. 저연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차로 누계 판매대수가 무려 700만 대 이상 팔렸다. 또 일본 코카콜라가 선보인 생수 ‘이로하스’는 12g의 초경량 페트병을 채택.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해 발매 3년 만에 20억 개를 돌파하며 ‘대박상품’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요 근래 가장 눈에 띄는 윤리적 상품 중 하나는 보석브랜드 ‘하스나(HASUNA)’다. 흔히 보석이라고 하면 ‘사치품의 상징’처럼 여길 수 있으나, 하스나는 “보석을 사는 것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그간 보석 관련 사업은 “개발도상국에서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 이들을 착취한다”는 비난이 많았다.
이와 달리 하스나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빈곤층이 만드는 장식품을 공정하게 수입하고,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환경이나 노동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페루의 소규모 광산에서 채굴된 원석을 사들인 다음 현지의 장인기술을 통해 보석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단순히 귀한 보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의 윤리성도 중시여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하스나는 이세탄백화점에 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 소비자들의 이러한 변화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이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특별히 20대의 경우 사회 참여에 한창 관심이 높았던 시기에 대지진을 겪었고, 재해지역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 열풍이 시작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각부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1985년 전체의 47%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65%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마케팅 분석가 하라다 요헤이 씨는 “1980년대 버블 경제기에는 해외여행을 가거나 남들이 알만한 명품을 사는 게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소비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20년간 저성장시대를 거치면서 소비 트렌드가 성숙한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소비 트렌드가 착하게 변화함에 따라 일본 기업들도 윤리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정립시키려고 분주한 모습이다. 자칫 비윤리적인 기업으로 낙인찍히면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경쟁을 벌여왔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빠듯하게 비용절감을 해온 방법들이 악덕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고, 순식간에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기업이 바로 ‘유니클로’다. 저가노선으로 성공한 유니클로는 지난 몇 년 동안 직원을 혹사하는 ‘블랙기업’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더욱이 값싼 가격으로 인해 버려지는 옷들이 늘어나자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유니클로는 전 세계 직원 동일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자사 의류를 세계 난민지역에 전달하는 ‘친환경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이미지 쇄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다.
단순히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면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주간겐다이>는 “앞으로 사람과 환경을 살리는 윤리적 브랜드가 더욱 확대될 것 같다”면서 “소비 트렌드를 무시하고 사회공헌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크게 뒤처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