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나면 가족도 왕따”
병원 리스트는 이미 퍼질 만큼 퍼졌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정부 입장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대전의 경우 아버지가 확진환자를 진료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라는 이유로 아이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서울시가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 의사가 29일부터 아무런 조치 없이 쇼핑센터를 돌아다니고 대형 행사에 참석해 서울 시민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했다”고 발표하자 해당 의사가 “심포지엄과 재건축 총회에 참석한 것은 메르스 증상 발현 전”이라며 “만약 메르스 의심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재건축 총회와 심포지엄에 참석했다면 미친 의사이고 의사 면허증을 박탈해도 마땅하다”고 반박한 것도 자신을 수천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 ‘잠재적 감염자’로 치부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서울 강남 지역 육아 카페를 이용하는 이 아무개 씨(29)는 “지역 특성상 남편 직업이 의사인 회원들이 많다. 초반에는 남편이 의사인 회원들이 ‘어디 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가 있으니 가지 말라’며 경쟁적으로 정보를 올렸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남편이 다니는 병원이 ‘메르스 병원’ 리스트에 오르면서 이웃들이 자기 가족들을 회피한다며 이러다 아이까지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글도 올라온다”고 전했다.
의료진은 물론 의료진의 가족까지 ‘잠재적 감염자’로 보는 이러한 현상은 2002~2003년 중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사스 의료진은 기자들의 취재요청에 시달리면서도, 취재에 응했다가 신분이 노출돼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스 옮기는 아이’라고 왕따를 당할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2009년 신종플루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치료를 전담하던 대학병원 의사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그 의사의 자녀는 “부모에게 신종플루를 옮아 우리 아이에게 옮기면 어떡하느냐”는 학부모들의 항의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지난해 정부가 에볼라 발병국가에 의료진 30여 명을 파견하면서도 파견자 명단을 대외비로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직원이 에볼라 발병국에 다녀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아들이 유치원에서 등원 거부를 당하면서 파견자들은 더욱 몸을 사렸다. 이 때문에 초반 먼저 출국한 10명은 철저한 비공개 아래 조용히 ‘출정’을 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