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시절 키워준 대가 내놔라”
▲ 정동영 통일부 장관 | ||
이를 두고 정치권과 정 장관의 고향인 전북 지역에서는 숙질간에 계속되어온 ‘10년 갈등’이 끝내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되고 말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숙부 정씨와 정 장관 사이에 대체 무슨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그 갈등의 진원지인 정 장관의 고향 순창과 전주를 직접 찾아가 봤다. 또한 정 장관 동생들과 사촌 등 주변 친인척을 통해 문제의 실체에 접근해보기로 했다.
15대 총선 열기가 한창이었던 1996년 초. 정 장관이 MBC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DJ에게 영입돼 국민회의에 입당, 제2의 고향인 전주에서 출마 준비를 하고 있던 당시의 일이다. 그의 선거 사무실에 숙부 정씨가 찾아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이후 두고두고 전주와 순창에서 화제가 됐다. 심지어 당시 정씨는 “상대당인 신한국당 후보 지지 운동을 펼치겠다”며 조카측을 향해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숙질간의 갈등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의혹이 덧붙여진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 장관의 조부와 부친이 사망한 후 남겨진 유산 가운데 숙부 몫까지 장손인 정 장관이 모두 챙겼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은 당시 총선에서 정 장관이 전주 덕진구에서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를 차지하며 이내 묻혀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숙질간의 갈등이 이번 소송건으로 다시 불거지면서 예전의 해묵은 소문도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창에서는 이와 같은 소문에 대해 그야말로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낭설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조카를 상대로 키워준 값을 내놓으라는 것이 대체 무슨 짓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 쯧쯧….”
숙부 정씨의 소송 소식이 알려진 지 나흘이 지난 3월25일. 정 장관의 고향인 전북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마을 입구에 모여 있던 예닐곱 명의 60~70대 주민들은 기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반응을 토해 냈다.
주민 정아무개씨(73)는 “숙부라고 하는 그 양반, 성질은 여기 고향에서도 아주 유명해. 아무도 그 고집을 말릴 수 없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젊은 시절 정씨와 제법 친하게 어울렸다는 권아무개씨(74)는 “옛날에 공무원 생활도 했고, 공사 현장 소장 노릇도 하곤 했는데, 그 성격 때문에 자주 갈등을 일으켜서 오래 못 버티곤 했다. 그래서 일찍이 고향을 떠나 전주로 나갔다”고 전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집안은 증조부가 참봉을 지내는 등 지역에서는 제법 중농 이상의 유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장관 부친이 이승만 정권 시절 도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 활동에 자주 나섰고, 또 묘목사업 등을 벌이다가 간암으로 40대 후반에 갑자기 별세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 문아무개씨(80)는 “정 장관 부친이 죽고 난 후 그의 동생되는 진엽씨가 나서서 여기 재산을 다 정리하고 빚 갚을 것 갚고 했다. 내 기억으로도 그때 아마 다 정리하고 나서 논 몇 마지기나 채 남았을까. 거의 재산이라곤 없었다. 지금까지도 여기 마을에는 선산 하나 있는 것 빼놓고는 정씨 일가 땅 한 평 남은 것이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정씨측에서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정씨의 부인과 가족 A씨는 “어르신(숙부 정씨)과 형님(정 장관)간에 재산 상속 문제로 다투고 말고 할 정도로 남은 재산이 많았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고 전했다. 당사자인 정씨 역시 이번에 소송까지 하게 된 서운함 가운데에는 과거 재산 상속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는 정도의 얘기만 할 뿐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않고 있다.
기자는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힌트를 서울에 있는 정 장관의 동생인 B씨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부친이 돌아가신 후 홀로 된 어머님이 생활고에 힘들어하자 숙부께서 당시 자신의 몫으로 상속받기로 된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선의를 베푸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을 숙부가 지금 말씀하시는 듯하다”고 밝혔다.
정 장관측의 설명대로라면 숙부 정씨 스스로가 선의로 포기했던 당시 상속 유산이 왜 지금에 와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일각에서는 ‘혹시 정 장관측이 장손임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감정이 격앙되어 있는 정씨측도 “큰집이 잘 되어야 모든 집안이 잘 된다는 신념으로 당시 다 양보했는데…”라는 서운한 감정만 표현할 뿐, 빼앗겼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만한 뉘앙스는 없었다.
마을 주민 정아무개씨(69)는 “정씨가 문중 종친회의 총무를 맡아보면서 돈을 좀 당겨 쓰는 등 빚이 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둘 가운데 하나를 먼저 보내고 형편이 궁핍하다고 들었다. 그래도 본인은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해서 정 장관 일가에게 꽤 성의를 다했는데, 정작 지금에 와서는 자기 자식같이 키운 장조카가 그래도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정치인이 됐는데도, 집안을 너무 모른 체한다는 데 대해 괘씸해 하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말은 어느 정도 객관적 진실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정씨 가족측도 인정하고 있다. 정씨의 부인은 ‘빚이 좀 많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을 쉬며 “부끄러운 부분이라 말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곁에 있던 A씨 역시 “그런 문제가 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도 더 그런 소송을 낼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B씨 역시 “안 그래도 그 빚 문제만큼은 우리 형제들도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앞으로 차차 해결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마 숙부께서는 현직 장관이 당신 생전에 그 정도도 바로 해결 못해주느냐 하는 섭섭함이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소송건에 대해서는 정 장관측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전주의 정씨 가족들도 미처 몰랐다고 한다. 정씨는 변호사 없이 본인이 혼자서 법원에 가서 소장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은 “말린다고 말을 들을 양반도 아니고, 이런 일로 가족들과 의논할 양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A씨는 “어르신 세대와 우리 세대와의 인식 차에서 빚어진 갈등이다. 96년과 2000년 선거 때 주변 친인척은 일절 선거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형님의 단호함에 어르신이 꽤 서운해 했고, 이후에도 친인척 관리에 지나치게 냉정한 태도를 견지해온 형님에 대해 어르신의 노여움과 섭섭함이 쌓이고 쌓여 이런 결과까지 오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