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몰래 의사 도와 째고 꿰매고…헉!
외과 수술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왼쪽 작은 사진은 대한전공의협의회 PA 제도 반대 포스터.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안 아무개 씨(35)는 경남권의 한 대형 병원에서 13년째 PA로 근무하고 있다. 한때 안 씨는 흉부외과 수술이 있는 날이면 집도의를 도와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일을 했었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환부를 열고 닫는 것은 당초 전공의의 몫.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의료사고 위험성,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등으로 기피학과가 된 외과 계열에는 전공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안 씨는 모자라는 일손을 메우기 위해 들어온 대체인력이다. 수술실에서 집도의의 수술을 돕는 응급구조사인 안 씨를 병원에서는 ‘PA’라고 불렀다.
안 씨는 “PA도 병동, 수술실, 응급실 등 여러 곳에서 활동한다. 특히 수술실에 들어가는 PA는 경력이 오래된 경우가 많다. 10년 이상 특정 기술을 반복한 PA가 막 실습을 시작한 전공의보다 숙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서도 “생명을 살린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만 의사가 해야 할 일과 PA가 해야 할 일은 구분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실’. 안 씨는 “현실이 열악하다. 병상이 100개 정도 되는 병원 응급실은 거의 의사가 혼자 근무한다. 의사는 한 명인데 찢어진 상처가 생긴 환자가 두 명이 왔을 때 한 명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결국 PA가 봉합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근무하는 병원은 병상이 600개 정도 되지만 인력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PA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의사도 있지만, 결국 PA를 필요로 하는 것도 병원”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의료법 규정상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PA가 현재 2000명 이상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A가 배치된 진료과는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주로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외과 계열이다.
PA의 대부분은 간호사 출신이다. 간호조무사나 응급치료사, 일반인도 PA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2~4년의 교육기간을 거쳐 국가공인자격을 갖추는 미국의 PA와 달리 국내 PA는 정해진 교육과정이나 자격조건이 없다. PA라는 명칭으로 수술과 진단 등 의사 역할 일부를 맡고 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인 셈이다. 이는 PA가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아무개 씨(여·29)는 간호사 출신 PA다. 한 씨는 대학병원에서 PA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직을 했다. 그는 “전담간호사, PA간호사 등 모두 PA를 뜻하는 말이다. 거의 모든 병원에서 PA가 활동하고 있고, 공공연하게 공개채용도 한다. 이 때문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PA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씨가 PA를 선택한 이유는 3교대도 없고, 상대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불명확한 업무구분을 겪으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한 씨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실습을 시작해야할 연차의 전공의들은 PA가 자신의 실습 기회를 뺏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PA 간호사 중에도 주 업무인 주사 한번 놓지 못하고 곧바로 봉합이나 수술하는 법을 익히는 사례도 있다”며 “병원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직업이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지위도 아니기 때문에 이직도 잦은 편이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의대 교수들이 PA를 선호하는 이유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낮은 연차의 전공의보다 PA가 수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공의들이 선배 의사나 교수가 아닌 PA로부터 시술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PA의 존재가 껄끄러울 수도 있다.
실제로 PA 합법(제도)화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곳도 전공의들을 대변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다. PA 제도는 병원이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유지하고 있는 편법이라는 것이다.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공장처럼 운영되는 대형 병원의 경우 수술에서 일부분만 의사가 시술하고 나머지 모든 수술을 PA가 한다. PA는 무면허자로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고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할 수 없는, 불법 의료보조 인력”이라며 “PA는 한국 의료체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직군이다. 병원은 환자에게 당신의 수술 대부분을 불법 무면허 의료보조 인력이 시행할 것임을 사전에 알리지 않아 환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PA가 이미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양성화된 제도이고, 이미 의료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제도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다.
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는 “서구식 PA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자격을 부여해 새로운 직종을 만들기보다는 간호사 인력 중 현행 전문간호사 제도 활용을 통해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현재 논란이 있는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 간호사, 전문간호사의 역할 정립을 내리고 이에 맞는 제도, 교육,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