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녀에 걸리고 브로커에 당하고 아청법에 ‘철퇴’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윤 씨는 성관계 대가로 한번에 15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 씨만큼 돈을 많이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윤 씨는 ‘돈 많은 스폰서가 있다’며 후배인 정 아무개 씨(여·26)에게 귀띔했다. 윤 씨처럼 적잖은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후배 정 씨는 이내 ‘목돈’ 생각이 났다.
정 씨는 윤 씨와 함께 ‘협박극’을 꾸미기로 했다. 스폰서인 이 씨의 알몸을 촬영해 아내에게 알리겠다는 빌미로 거액을 요구하기로 한 것. 그 길로 윤 씨는 이 씨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이 씨의 벗은 몸을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그리고 윤 씨는 계획대로 이 씨에게 3000만 원을 요구했다.
윤 씨 일당에게 협박을 받은 이 씨가 찾은 것은 경찰이 아닌 최 아무개 씨(36)였다. 최 씨는 이 씨가 참석한 강남지역 의사·한의사 모임에서 선배를 통해 소개받은 성매매 브로커. 기존 성매매업소보다 가격은 2배 이상이었지만, 모임의 몇몇 동료의사들도 이미 최 씨를 통해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점이 심리적 부담감을 덜 수 있는 요인이었다. 협박녀 윤 씨도 성매매 브로커인 최 씨가 소개시켜 준 여성이었다.
이 씨의 사정을 들은 최 씨는 이 씨에게 2000만 원을 요구했다. 자신이 중재에 나서 2000만 원으로 윤 씨를 설득해 보겠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최 씨가 해결사를 자처하며 받아간 2000만 원은 윤 씨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씨에게 받은 2000만 원을 들고 잠적했던 최 씨는 자신이 성매매를 알선했던 다른 의사 2명에게 연락해 도피자금으로 각각 1000만 원과 500만 원을 받아 챙기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씨의 신고로 이 씨를 포함해 의사 3명이 불구속 입건되고, 성매매 브로커 최 씨과 협박녀 윤 씨, 정 씨가 구속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씨는 언제 성매매 사실이 들통 날까 전전긍긍하던 굴레에서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의료기관 취업이 제한되거나 의료인 자격이 일정기간 정지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8월 개정 시행된 아청법에는 성범죄자의 10년간 취업제한 기관에 의료기관 전체(의원, 병원, 종합병원)가 포함됐다. 다시 말해 성범죄를 저질러 형이 확정된 의료인은 10년간 의료기관에 취업은 물론 운영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아동·청소년뿐만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까지 포함된다. 의료기관 내 성범죄를 비롯해 유흥주점, 노래방, 공공장소 등 진료실 밖에서 일어난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의료계에서 유독 의료인에게 적용되는 처벌이 지나치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2012년 11월 강제추행 혐의로 유죄를 받은 40대 의사 A 씨는 취업과 의료기관 개설이 모두 막혔다. 평소 호감이 있던 여성과 단둘이 집에 있던 A 씨는 키스를 시도했다 거절당했고, 스킨십 시도를 멈췄다. 하지만 여성은 A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A 씨는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2012년 5월 노래방에 갔다 그 곳 여주인과 합석했던 60대 의사 B 씨도 4개월 후 경찰서로부터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노래방 여주인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것이다. 노래방 주인은 800만 원에 합의하자고 제의했지만 B 씨는 잘못한 게 없다며 합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벌금 300만 원 처분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 2013년 8월 보건소에 의원개설 허가를 신청하러 갔다 아청법에 저촉돼 개설 허가가 10년간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 씨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만 아청법에서는 성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의내리지 않아 성매매를 성범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폭력 방지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성인 대상 성범죄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위력·위계를 사용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반면 2011년 경찰청은 전국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종사자의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면서 성매매를 성범죄 유형에 포함시킨 사례도 있다.
이처럼 해석에 따라 성범죄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고,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의료인에게 10년의 족쇄를 채우다 보니 의료계에서는 아청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지유 이정진 변호사는 “2012년 아청법 개정당시 전문자격을 소지한 자 중 유일하게 의료인에 대해서만 성범죄로 인한 취업제한 규정을 둬 의료인들의 반발이 많았다. 그 근거는 의료행위 중 신체접촉이 많아 성추행 등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면서 “그러나 진료실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하겠지만 진료실 밖에서 일어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도 10년의 자격제한을 두는 것은 과중한 처벌로 비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여하튼 현행법상 의료인이 성범죄를 범하는 경우, 또 성범죄로 인해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경우에도 자격정지와 취업제한 같은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