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사고’ 전력자들 민감금융 일제히 투하
각종 금융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전직 금감원 고위간부들이 금융권 요직으로 재취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인수위원회가 꾸려져 언론과 국민들의 조명을 받는 한국금융연수원은 요즘 다른 문제로 주변이 소란스럽다. 이미 지난 4월 25일로 임기가 종료된 이장영 금융연수원장의 후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낙하산’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낙하산으로 지목된 인물이 ‘성완종 게이트’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조영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이어서 금융권은 물론 사정당국까지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자리한 금융연수원은 전국 은행연합회 부속 연수기관이다. 은행들이 갹출한 자금으로 행원들의 각종 연수와 자산 관리사 등 자격시험 시행을 맡고 있는 순수 민간조직이다. 하지만 수장자리는 늘 금감원 고위직 출신들의 몫이었다. 이장영 현 금융연수원장도 금감원 부원장 출신이며, 신응호 현 금융연수원 부원장은 금감원 부원장보를 지냈다.
금감원 부원장 출신이 원장을,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이 부원장을 맡는 ‘금피아 콤비’가 관행처럼 이어진 셈이다. 금감원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 신응호 현 금융연수원 부원장은 KB금융그룹에 매각된 LIG손해보험 감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금융권은 부적절한 처신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인물까지 민간금융단체 수장으로 앉히려 하자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금융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민간금융단체 수장 자리를 챙겨주겠다는 발상은 뻔뻔함을 넘어 용감한 수준”이라면서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한다더니 금융권은 예외인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조기인 보험연수원장
‘보험사를 위한 보험사’인 재보험사는 보험사들이 막대한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입하는 또 다른 보험으로, 일반 소비자들과는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는 곳이다. 이러다보니 ‘금피아’ 출신이 조용히 똬리를 틀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평을 듣는다. 코리안리 감사위원으로 옮기게 된 조기인 원장은 지난 1983년 보험감독원에 입사한 뒤 금감원 광주지원장, 소비자보호센터 국장, 감사실 국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금피아 출신 인사다.
조 원장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최용수 현 감사위원이 금피아 출신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최 감사위원은 금감원 광주지원장, 공보실 국장 등을 역임했다. 조 원장과 최 감사위원의 공통분모는 금감원 광주지원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코리안리 감사 자리는 금감원 광주지원장 출신들의 재취업 창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보험업계에서는 금감원 출신 감사들을 무더기로 발견할 수 있다. 감사는 사장의 경영행위를 감시하는 자리로, 대부분 회사내에서 ‘넘버2’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 분류된다. 손해보험업계의 경우 외국계까지 포함한 국내 16개 손보사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금감원 출신이 감사를 맡고 있다.
삼성화재는 조병진 전 금융감독원 생명보험 서비스 국장이, LIG손해보험은 박병명 전 금감원 보험감독국장이 감사를 맡고 있다. 또 롯데손해보험은 민안기 전 금감원 부국장을 상임감사위원으로 임명했고, 흥국생명도 이현복 전 금감원 소비자보호국 부국장을 감사로 영입했다. 이밖에 안형준 동부화재 감사, 나명현 현대해상 감사, 강영구 메리츠화재 윤리경영실장, 이성조 한화손보 감사, 김범수 AIG손보 감사 등이 금감원 출신의 보험사 감사들이다.
‘낙하산’ 의혹이 제기된 금융연수원 입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생명보험업계도 24곳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금감원 출신 감사를 두고 있다. 강길만 NH농협생명 감사, 김상규 동양생명 감사, 박창종 푸르덴셜생명 감사, 김동학 흥국생명 감사, 이병석 동부생명 감사, 이순관 라이나생명 감사, 장명식 현대라이프 감사 등이 주인공들이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유독 금피아의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를 금융사고 빈발과 공직자윤리법 시행에서 찾고 있다. 지난 3월 말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은 금피아를 포함한 관피아의 취업제한 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취업이 제한되는 금융사의 범위도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대형 금융사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금감원 인사들 대부분은 3월말 이전에 사임했다. 따라서 이들은 바뀐 공직자윤리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저축은행 사태와 동양그룹 사태, 신용카드 정보유출 사건, KB금융 내분 등의 금융스캔들이 금감원 고위직의 취업문을 넓혀준 꼴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보험사 한 관계자는 “보험업은 규제가 강한 업종이다 보니 감독당국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금감원에 대한 국민과 금융권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만큼 자중해야할 시기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