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성석제도 그의 이야기서 영감
바둑기자와 소설가를 넘나들던 이야기꾼 이인환이 자칭 ‘잡문집’ <고래여, 춤추지 말라>를 펴내 바둑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토리 텔러 이인환이 최근에 책을 또 한 권 펴냈다. 제목이 <고래여, 춤추지 말라>(도서출판 도어즈)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잡문집’이라는 건데, 글쎄, 주제와 소재가 이것저것 다양하니 ‘잡문’이라는 것이 꼭 틀린 말도 아닐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첫 장을 열면서는 요즘은 온 동네가 인문학이구나, 인문학이라는 말을 너무 값싸게 갖다 붙인다는 자성의 소리도 있는데,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웃음이 난다.
이인환은 바둑 동네에서 일하던 시절, 서른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이미 별명이 ‘이만불의 사나이’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냥 만물박사에서 박사를 떼고, ‘만물’이라고 부르다가 그 박학다식과 해학에 시샘이 난 사람들이 ‘만불’이라고 비틀어 버린 것이다.
“…요람의 아기는 자라게 마련이다. 인본적으로 몸통이 커지고, 계몽적으로 머리가 커지고, 실증적으로 팔다리가 커진 것이다. 덩치가 커져 요람으로 감당이 안 되면, 요람 대신 침대로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 신은 인간이 자라 요람이 망가질 지경이 되어도 바꿔주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덩치가 커진 인간은 망가진 요람에서 기어나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엄마 어디 갔어? 죽었나 봐!
그리하여 고아가 된 인간에게, 니체는 ‘힘에 대한 의지’로 우뚝 일어서서 ‘초인 고아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인환이 니체의 ‘신은 죽었다’를 해석하면서 들려준 얘기의 한 토막이다.
“…나무나 풀은 결코 열을 짓거나 줄을 맞추지 않는다. 사람이 농작물이라고 이름 붙이고 재배나 경작할 경우, 열을 맞추고 줄을 짓는다. 질서를 부여하는 것-엔트로피 지수 낮추기-이다. 사람은 엔트로피 지수를 낮추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자연의 힘에 반하는 행위라는 결론이다.
…노장사상의 핵심인 무위(無爲)는 사람의 욕심에 따른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제1의(第一義)다. (주머니를) 채우지 말라. 차면, 담을 수 없게 된다. (담장으로) 막지 말라, 막으면 좁아진다 하는 것이다.
무위사상의 뿌리이자 (무질서를 지향하는) 자연의 절대 격률인 엔트로피 법칙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것이다. 모든 섭리와 법칙의 뿌리는 단 하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무위 나라의 도(道)는 이렇게 된다.
-정리정돈 하지 말라. 어차피 어질러진다.”
이인환이 ‘엔트로피, 그 위대한 명징성’이라는 장에서 들려주는 얘기다.
거침없는 입담과 기발한 소재로 필명을 날리는 소설가 성석제도 1990년대 한때, 바둑 동네 식구처럼 지낸 적이 있었다. 동양그룹에서 ‘동양증권배’라는 국제기전을 개최하던 시절이었다. 소설가가 되기 전의 성석제는 동양그룹 홍보실 기전 담당으로 한국기원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이인환은 성석제와 바둑 기자들과 바둑 두고, 술 마시면서 어울렸다. 나중에 성석제가 소설가가 되고 큰 상도 받고 할 때 인터뷰하면서 말했다.
“내 소설의 모티브 중에서 절반 이상은 이인환 선생에게 들은 얘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