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권 전쟁’ 수읽기 돌입
새누리당이 공천권 행사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무총장 인선을 두고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간에 권력갈등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왼쪽, 사진제공=청와대)과 김무성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총선 전에 김 대표가 당직개편에 나서면서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총선을 앞두고 공천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래권력으로 불리는 김 대표로서는 총선에서 자신의 지원군을 많이 확보하면 할수록 대권고지 점령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청와대로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국회의 ‘신 친박’ 세력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이런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양측이 당직개편을 두고 권력갈등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거대 여당의 사무처를 운영하는 사무총장은 평상시에는 당직자와 당비를 관리하며 당의 살림을 챙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인선되는 총선 사무총장의 존재감은 평시와 사뭇 다르다.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공천권 행사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사무총장이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에서 위원장을 맡거나 간사를 맡기 때문이다.
일단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의원들은 수도권에서는 진영(서울 용산)·정두언(서울 서대문구을)·한선교(경기 용인병)·황진하 의원(경기 파주을)이 있고 충청권으로 넓혔을 때는 재선인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의원까지 포함되고 있다. 홍문표 의원은 비록 재선이지만 지난 1997년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2003년 한나라당 제2사무부총장을 역임한 경력이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더군다나 이완구 전 총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리스트 파문에다 메르스 정국까지 겹쳐 어려워지고 있는 충청권에서 사무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무총장 자리 내정은 단순한 지역안배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당내 계파 그리고 당과 청와대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봐야 하며 나아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총선을 통한 대권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이번 사무총장 인선은 총선을 10여 개월 앞둔 시점에 이뤄지는 총선용 사무총장이다. 사무총장 인선을 두고 당 대표와 친박계 나아가 청와대까지 갈등이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이유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왼쪽)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해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전 대표(오른쪽)와 맞붙어 당 대표가 됐기 때문에 사무총장 자리 문제에서만큼은 물러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친박계는 차기 사무총장을 김 대표 측 인사가 맡게 되면 공천 학살이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 친박계는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이방호 전 사무총장이 주도한 학살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 측에서도 사무총장 자리는 포기할 수 없다. 총선에서 우호적인 인사를 많이 심어 대권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사무총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영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김 대표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려고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전 대표와 맞붙어 당 대표가 됐는데 사무총장 자리문제에서 만큼은 물러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이나 홍문표 의원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는 까닭도 김 대표계나 친박계 색채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분란을 피해야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계파 사람으로 확실하게 규정짓기 어려운 사람을 고르다보면 결국 두 의원이 유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선교 의원
현재 김 대표 측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한 의원은 명실상부 ‘원조 친박’이기 때문에 한 의원을 사무총장에 세운다면 계파 안배로 최소한 내줘야 하는 제1사무부총장 자리에도 김 대표 최측근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 의원도 사무총장 직에 어느 정도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선교 의원실 관계자는 “한선교 의원이 한다거나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당이 필요로 한다면 나가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홍문표 의원
사실 한 의원이 유력한 카드로 떠오르기 전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3선이 아닌 재선으로 후보군을 확대해서 사무총장 자리에 확실한 자기 사람을 앉히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선이라는 사무총장의 관례만 배제한다면 수도권 재선 의원들 중에는 김 대표의 복심이라고 할 만한 의원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이 무리라는 시선이 많았고 김 대표가 이를 철회하면서 후임 사무총장 인선이 길어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사무총장의 어정쩡한 모양새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이 사퇴한 이군현 사무총장을 만나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하자 이 사무총장이 손사래를 치며 ‘김 대표가 사무총장 인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대표의 발언으로 공식화된다. 김 대표는 “갑작스러운 의사표명이라서 아직 전혀 새로운 인선 준비가 안 되어있다”며 “그때까지 총장을 비롯한 모든 당직자들은 계속 근무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군현 의원실도 이 같은 당 대표의 말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전혀 몰랐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시 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무총장 거취의 ‘이상한 번복’을 두고 당연히 당 대표와 조율이 됐을 사퇴에 대해 김 대표가 한발 물러선 것은 그의 후임 인선 카드가 먹히지 않아 이 사무총장 유임으로 일단 시간벌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로서도 사무총장 자리에 어떤 사람을 넣을지 쉽사리 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홍영식 소장은 “총선에서 우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무총장 자리를 두고 갈등이 번지면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대권 판도까지 바뀔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당권과 대권을 동시에 품으려다 당내 갈등에 휘말려 좌초된 것을 봤기 때문에 완전히 자기 사람을 꽂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청와대와의 조율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김 대표가 대권욕에 빠져 사무총장 인선에 깊이 관여하다가 청와대의 ‘진노’를 살 경우 지금까지 ‘불가근불가원’ 전략으로 살얼음판을 걷던 대권 전략도 한꺼번에 틀어질 수 있다. 사무총장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인선 이후에도 뒷말이 나올 수 있어 빠르면 6월 말이나 늦으면 7월 초 사무총장 지명이 정해질 전망이다. 물론 청와대의 ‘오케이’ 사인도 나야할 사안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