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김정은 세력’ 견제…붙박이냐 일회용이냐
야전 경험이 없는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 자리에 앉힌 김정은의 속셈은 무얼까. 지난 1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왼쪽)이 새로운 인민무력부장으로 추정되는 박영식(가운데) 등과 함께 군부대 예술선전대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 제1위원장은 제2차 군단예술선전대 공연을 관람했다. 김정은의 공연 관람 소식보다 더욱 눈길을 끈 사실은 그를 수행한 측근 간부들의 호명 순서. 간부들의 호명 순서는 대개 서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군부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제일 먼저 호명됐다. 그리고 군부 3순위에 해당하는 리영길 총참모장(합참의장)에 앞서 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의 이름이 불렸다. 사실상 지난 4월 30일 현영철이 처형되며 공석이 된 인민무력부장 자리에 박영식이 임명된 사실을 처음 공개한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공식적으로 박영식의 직책을 호명하진 않았지만, 우리 당국과 북한전문가들은 그의 인민무력부장 내정을 기정사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당국은 새롭게 등장한 박영식이라는 인물과 더불어 그의 인사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은이 실권을 장악한 후 최근까지 3년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모두 5명의 인민무력부장이 물갈이됐다. 김영춘(임명은 김정일), 김정각, 장정남은 사실상 좌천됐고, 김격식은 좌천 뒤 최근 지병으로 사망했다. 전임자였던 현영철은 뚜렷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처형됐다. 이들의 임기는 평균 6개월 정도. 김정일 시대 17년 동안 인민무력부장 자리에 네 명이 거쳐 간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자주 교체됐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북한 군 내부가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일부는 군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에 의문부호를 붙이고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이를 두고 “북한 군 내부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군부 내 파벌 형성도 감지되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론 김정은을 두고 군 내부에서 굉장히 안 좋은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영철의 처형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박건하 NK지식인연대 부대표 역시 이번 인사를 두고 “김정은 스스로 군 내부 기강을 확실히 다잡기 위한 조치”라며 “이를 위한 김정은 나름대로의 정치 일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라며 “군대가 당의 지도하에 놓여 있는 것은 총정치국이라는 조직이 군대를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북한군은 총정치국이라는 당적·정치적 조직을 통해 장악되고 있는 셈이다.
박영식은 이전까지 총정치국의 2인자이자 실권자로 여겨졌던 조직부국장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야전 경험이 없는 철저한 정치군인 출신이다. 박건하 부대표는 북한 군부의 당적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정치군인에 대해 “이러한 정치군인들은 북한의 정치대학에서 수학한 뒤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북한은 군의 당적 지도를 위해 아예 대대 단위부터 정치군인을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전 인민무력부장 대부분은 야전 및 전술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정통 군인’들이었다. 군의 행정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만큼 정치군인 박영식의 인사는 이례적인 셈이다.
이윤걸 대표는 “총정치국의 조직부국장은 당으로 따지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직비서’와 유사하다. 사실상 군부의 인사 및 검열을 담당했던 실권자”라며 “그러한 정치 일꾼이, 그것도 아무런 야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인민무력부를 맡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다. 사실상 군부 내 정치조직들에 힘을 실어 내부 반체제 움직임을 다잡겠다는 심산”이라고 설명했다. ‘특단의 조치’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당적 지도를 염두에 둔) 이번 인사 조치의 특징을 놓고 볼 때 중앙당 조직지도부를 맡고 있는 김설송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박영식 신임 인민무력부장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시대 들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인민무력부장 자리에서 그의 연명 여부가 핵심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요직에 요직을 거쳐 왔던 전임자들 대부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평생 정치 일꾼의 길을 걸어 온 그가 북한군 전체를 진두지휘해야 할 막중한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야전 경험이 전무한 그의 출신성분을 두고 군부가 쉬이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미 순수 당 일꾼 출신인 최룡해가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을 당시 군부 내 불만이 컸었기 때문. 최룡해가 다시 당으로 복귀한 배경에도 이러한 점들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당국자는 “전략적 인사기 때문에 우리도 박영식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라며 “아직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김정은의 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때문에 북한 군부의 강경 기조가 이번 인사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