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다시 발길…충격서 서서히 벗어나
1번 환자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하고 카타르를 경유해 5월 4일 입국했다. 입국 7일 만에 38℃ 이상의 고열과 기침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충남 아산서울의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고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으나 병실이 없어 근처 365열린의원을 찾았다.
서울 강남구 보건소.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때 메르스에 감염된 정 원장은 “그 전에 우리 병원을 다녔기에 잘 알던 환자였다”며 “평택 병원에 있을 때 치료가 제대로 안 돼 차도가 없어서 우리 병원으로 왔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정 원장은 국내 두 번째로 완치돼 퇴원했다. 5일부터 임시 휴원했던 365열린의원도 14일 문을 다시 열었다.
‘기침과 발열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병원 입구 벽엔 주의사항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증상을 간단히 확인했다. 진료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정 원장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령의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진료실 밖으로 간혹 웃음소리가 새어나올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정 원장은 기침 한 번 하지 않았다. 건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기자와 마주했을 때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완치돼 항체가 생겼기 때문에 마스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분명하고 선 굵은 목소리에선 메르스를 이겨냈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한 간호사는 “원장님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그날 근무한 간호사들이 전부 격리됐다”며 “원장님도 간호사도 지금은 건강하다”고 전했다. 그 사이 정 원장은 접수창구에 앉아 환자들의 처방전을 직접 챙기고 있었다.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이 지난 15일 대전시 서구보건소를 방문한 모습. 사진제공=보건복지부
한 환자는 “(365열린의원에) 10년 동안 다녔다. 원장님은 정갈하고 깨끗한 분이다”며 “메르스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전혀 꺼림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자가 떠날 무렵 서너 명의 환자들이 정 원장을 찾았다. 메르스로 전국이 들끓고 있지만 적어도 365열린의원은 그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
메르스 유탄을 맞은 병원 밖 분위기는 어떨까. 같은 건물에 입주한 약국의 약사는 “메르스 때문에 엄청난 타격이 있었다”며 “우리도 자가 격리를 하고 보건소에서 혈액 검사도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음성 판정을 받고 나서야 약국을 다시 열었다고 했다”는 그는 “고혈압 등 장기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는 찾아오지만 호흡기 질환 환자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보탰다.
해당 건물 청소관리인은 “사실 메르스가 전염성이 강하니까 무서웠지…”라며 “원장님이 모르셨다가 알게 되셨을 때부터 건물 드나드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건물 상인은 “처음엔 장사가 반 토막 났다. 손님이 하나 없었다”며 “그래도 원장님이 욕심 안 부리고 초기 대처를 잘해 그 이후로 감염자가 하나도 없다. 매출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정 원장과 건물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지하 볼링장은 신경 안 쓰고 사람들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건물을 빠져나올 무렵 한 경비원이 벽에 알림 쪽지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당 건물은 청정지역입니다. 저희는 매주 1회 전문 방역소독과 매월 1회 업체별 방역소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안내문이 층 입구마다 걸렸다. 건물 안에는 수십 개의 상점이 가득했지만 마스크를 낀 손님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폭풍 속의 고요, 메르스 태풍의 눈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