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느끼지 않으면 흥분할 수 없다”
1997년 범행 당시 가해자(14세) 모습.
“1997년 6월 28일, 나는 양지의 세계에서 영구 추방됐다.” 고베 연쇄아동살인 사건의 가해자 A(32)가 쓴 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당시 만 14세이던 A는 망치와 칼을 이용해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과 6학년 남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심지어 그는 죽인 아이의 머리를 절단해 학교 정문 앞에 놓는, 극악무도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 소년법은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형사처벌 가능 연령을 ‘16세 이상’에서 ‘14세 이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된 것이다. 10대 소년이 저지른 것이라 믿기 힘든 이 끔찍한 사건은 일본 사회를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수기에 의하면, 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큰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죽음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고양이나 작은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걸 반복했다. 정신감정 결과, A는 공허감이 커진 상태에서 사춘기 성적 충동이 공격성과 결합돼 강한 가학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분화된 성충동, 그의 일그러진 쾌락이 살인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수기를 통해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A는 “언제부턴가 나는 죽음을 가까이 느끼지 않으면 성적으로 흥분할 수 없는 몸이 되어 갔다” “뒷산에서 남자아이를 살해했다. 그의 머리를 집으로 가져와 살인보다 더욱 심한 행위를 했다. 상심의 끝을 맛봤다. 정신의학적으로 어떤 해석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이후 2년간 성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 번도 발기한 적이 없었다” 등 참혹한 고백을 이어갔다.
A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이 아닌지 알 수 없게 됐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사실이 견딜 수 없어서 매일 밤 울부짖다 지쳐 잠들었다”고 말했다.
2004년 의료소년원에서 가석방된 A는 가족과 떨어져 신원을 숨기고 용접공과 일용직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지내왔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심한 노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삶’의 고마움도 깨달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7년이 채 안됐던 재활기간이 반성의 시간으로서 충분했는지에 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수기를 집필한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에 맞서고, 그것을 쓰는 것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자기구제”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권말에는 ‘피해자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으로 사죄와 반성의 글을 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출판 중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피살 당시 11세이던 소년의 아버지는 “어째서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는가. 지금이라도 당장 출판을 중단하고 책을 회수하길 바란다”며 울분을 토했다.
수기 출간과 관련해, 인터넷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대다수가 부정적인 의견이다. “마치 연예인이 책을 낸 것 같은 자아도취가 느껴진다” “이런 책이 일본 전역에 깔렸다니 끔찍한 일이다” “유족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차마 책을 내진 못했을 것” 등등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소년범죄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오히려 소년범죄를 조장할 위험이 더 크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방송인 사카기미 시노부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적어도 피해자 유족들에게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면서 “유족들의 마음을 유린한 책에 한 푼도 돈을 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A의 수기를 내기 위해 출판사 간에 쟁탈전이 벌어졌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출판 제의는 A가 중개인을 통해 먼저 해왔다”고 한다. 출판사는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소년범죄와 관련해 범인이 본인의 심경을 이야기한 사례는 거의 없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판단 아래 출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A 씨가 3세 때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수기에 게재돼 있다.
출판사 측은 “인세의 용도는 정확히 듣지 못했다. 유족에 대한 보상 책임을 느끼고 있으므로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생활비나 유흥비로 쓰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샘의 아들법(son of sam law)’을 일본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미국 대부분 주에서 시행중인 샘의 아들법은 범죄자의 일대기를 책이나 영화로 만들었을 경우 그로 인한 이득이 범죄자에게 다시 흘러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이다. 1977년 6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데이비드 버코위츠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 등으로 총 32만 5000달러(약 3억 60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이를 몰수하기 위해 미국 뉴욕시가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구제’를 위해 수기를 집필했다는 A 씨. 적지 않은 돈이 분명 그의 수중에 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돈으로 신원을 숨긴 채 살아간다. 마치 상업성으로 얼룩진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함이 엄습해온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