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군주 정조를 만나 승승장구하던 정약용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배에 유배를 거듭해서 그가 또 다른 삶을 시작한 곳이 바로 강진이다. 지금에야 강진이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관광지지만, 산 좋지 않고 물 좋지 않은 곳이 없었던 200년 전 그곳은 굳이 찾아갈 일이 없는 오지였겠다.
그런데 강진이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정약용이 있었을까? 강진은 그저 좌절의 땅이 아니라 부활의 땅이었다. 거기서 그는 자기를 닦고 일신우일신한 것 같다.
오랫동안 벼슬을 떠나 백성들 속에서 백성으로 지내면서 다산은 오히려 누가 어떻게 백성을 대우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본 것 같다. 그는 좋은 목민관으로 장련현을 맡았던 교리 김희채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수가 나서 구월산이 무너졌단다. 집집마다 농사를 망치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가 나가 시찰하매 백성들이 맞이하여 통곡하거늘, 그는 말에서 내려 백성들의 손을 잡고 함께 통곡하니 백성들이 감동하여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울음이 멎자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묻고….”
김희채는 백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중앙에 보고하려 했으나 중간에서 감사가 장계를 올렸다. 김희채는 인자하나 일에 어둡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체된다. 그가 돌아갈 때 안타까운 백성들이 모두 나와 길을 막고 그가 탄 말굴레를 잡은 채 열 겹이나 둘러쌌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하고 있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넘어뜨리려는 사람이 있으니.
백성이 하늘이다. 그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영혼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을 통해 내 형편을 알리고 나를 알리고 그를 아는 것이다. 어찌 보면 <목민심서>는 소통하는 리더십의 교과서다.
다산이 강진에서 맺은 인연을 봐도 어쩐지 강진은 유배지가 아니라 축복의 땅 같다. 초의선사와 추사 선생의 우정은 유명하지 않나. 제주도로 유배된 추사를 만나기 위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초의는 배를 여러 번 탔다. 그렇게 찾아온 벗이라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는 공자님 말씀이 내 마음이 되는 것일 것이다.
그 초의선사의 스승이 바로 혜장선사인데, 그가 바로 다산의 친구다. 다산이 강진에서 만난 평생의 스승이자 제자였다. 초의선사는 그 스승과의 인연 때문에 다산에게서 차를 배우고 시를 배웠다고 하니 인연의 흐름이 신비하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