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엔 거리…영화 홍보에 ‘포옥’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모진 20여 명과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했다. 지난 2012년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임준선 기자
이 전 대통령이 찾은 상영관(CGV 청담씨네시티)은 일반 극장과 달리 클래식이나 오페라 극장처럼 2층 구조로 돼 있어 전체 대관을 하지 않고 2층만 빌리더라도 방해받지 않고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영화 관람을 위해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대관했다’는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영화 관람에 앞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 이상의 애국은 없다”며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애국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영화 관람에 동석한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흥행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이 측근은 “이 전 대통령은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제2연평해전의 명칭을 ‘연평해전’으로 바꾼 바 있다”며 “국민들이 이런 좋은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도) 의미가 있는 영화인만큼 흥행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지난 2008년 4월 당시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제2연평해전을 격상해서 연평해전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지난 2012년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1층에서 영화를 관람한 대다수 관객들은 바로 위에서 이 전 대통령이 영화를 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영화를 본 70대 중년 부부는 이 전 대통령과 같이 영화를 봤다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이냐?”고 반문하며 “진짜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과 참모진들은 영화 내용에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비서관은 지인에게 “눈물이 많이 나서 닦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영화를 같이 관람했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전 수석비서관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물 흘린 사연을 전했다. 이 전 홍보수석은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다 같이 울었지, 어떻게 안 울 수가 있겠느냐”며 “우리가 (연평해전 사상자의) 희생을 잘 기리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의 차이지 안 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영화 관람을 마친 이 전 대통령과 참모진은 영화관 1층에 있는 CJ의 비빔밥 전문 외식 브랜드에서 식사를 했다. 어린 학생들은 갑자기 마주친 전 대통령을 보며 “이명박이다”라고 수군거리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이 전 대통령은 타고 온 차량에 탑승해 길을 떠났다.
다음날인 26일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시 한 번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감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 이상의 애국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날의 상처와 충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과 생존장병, 전우 여러분에게 위로와 격려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최근 각국 정상들과의 교유록 집필과 재단 운영에 관해 구상 중이라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아직 본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난 번 <대통령의 시간> 책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과의 우정이나 당시 사진, 정상회담 뒷이야기 등을 엮은 교유록을 준비 중”이라며 “특별하게 무엇을 한다기보다는 재단 활동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구상 중인 단계다”라고 전했다.
한편 최근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으로 여권이 어수선한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딱 한 차례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지난 2013년 1월 22일, 이 전 대통령은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국회는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재의결이 아닌 대체 법안인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서 의결하고 공포하면서 마무리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본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 사안에 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당분간은 이 사안에 대해서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의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도 없었고…(말할 일도 없다)”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여권이 거부권 파문으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러운 상황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이세력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세 결집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거부권 정국의 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친이계의 셈법도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제헌국회 14건, 2대 국회 25건, 3대 국회 3건, 4대 국회 3건, 6대 국회 1건, 7대 국회 3건, 9대 국회 1건, 13대 국회 7건, 16대 국회 4건, 17대 국회 2건, 19대 국회 1건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권력지형이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와의 ‘균점’으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