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의 ‘용’ 되려 용쓰시나
당시 참석자들의 ‘뒷담화’를 종합하면 “김 최고위원이 회의석상에서 발언을 시작하면 모두들 딴청을 피운다” “워딩을 타이프하는 (기자) 말진들도 귓속말을 하거나 낄낄댄다” “오늘은 또 뭘까 하며 손바닥을 비비며 타이핑을 준비하는 당직자도 있다”는 등의 온갖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온다. 당시 한 참석자는 “그 수줍음 많은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해도 너무 한다’고 한 것을 보면 김 최고의 발언이 내용이 심했다기보다는 행태가 모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왜 김 최고위원은 이렇게 정가의 ‘밉상’이 됐을까. 정치권에선 일단 그의 ‘덩칫값’을 꼬집는다. 이명박 정부 당시 ‘40대의 젊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그는 ‘박연차’와 관련한 거짓해명으로 걸려 넘어지고 낙마했다. 당시 정가는 “재산 4억으로 총리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 뭘 하겠느냐”, “저 인물로 총리가 됐다면 바로 대권 직행이 가능했다”고 혀를 찼다.
이후 김 최고위원은 19대 국회에 입성했고, 2년의 의정활동 후 전당대회에 나서 최고위원이란 타이틀까지 달았다. 하지만 구설은 끊이질 않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를 비판하며 ‘홍어x’이라 칭한 것은 “뭘 몰라서 그랬겠지”(한 비박계 의원) 쳐도, 최고위원이란 지도부 자리에 올랐음에도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지원 중 헬기추락 사고로 숨진 소방대원 영결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것은 “앞뒤 분간도 못한다”(여권 관계자)는 말을 들을 법했다.
압권은 지난해 10월. 김무성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염장을 지르면 되느냐”며 돌연 최고위원직을 던진 그때다. 너무 느닷없던 그때 누군가 “박 대통령 눈에 들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다 며칠 만에 그는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복귀한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입’에 ‘팬심’도 달아나는 순간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제2연평해전 13주기를 기념해 평택에서 열린 최고위에선 희생자를 두고 “개죽음”이라 발언하고 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전사자들 영결식에 국가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아 그것을 빗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당일 평택 현장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김 최고위원은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그게 알려지면서 또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김 최고위원의 해프닝을 두고 ‘풋내기’의 어리광 정도로만 생각했던 정가는 최근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유 원내대표를 향한 그의 ‘어깃장’에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일각에선 김 최고위원이 ‘박심’을 얻어 친박의 차기 주자로 서려는 것 아니냐고 해석한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해 6월 전당대회 출마선언문에서 “당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 새누리당은 지금 입은 닫고 귀는 막고 눈은 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당”이라며 “청와대 출장소로 비춰지고 있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앞서 2012년 대선 경선 출마 선언문에서는 “통치의 시대를 끝내겠다”며 “측근이 아닌 최고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고, 공권력을 자기 것처럼 사유화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한 여권 인사는 “최근 김 최고위원이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며 “친박 누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를 차기로 옹립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그의 ‘해석불가’ 언행이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