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 먼저 잡아라’ 호남 지렛대 전략
‘비노 트로이카’ 천정배 의원(왼쪽), 손학규 전 상임고문(가운데), 정동영 전 상임고문이 호남을 고리 삼아 야권 재편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요신문 DB
미워도 싫어도 호남이 야권 민심의 상수라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 때마다 ‘호남 필승론’과 ‘호남 필패론’이 치열하게 맞붙지만, 적어도 제1라운드의 핵심 변수는 ‘범야권 지지층 결집’이다. 야권 권력재편의 승부가 끝나기 전까지는 ‘집토끼’를 누가 잡느냐의 게임이라는 얘기다. 새정치연합 전략통인 한 의원은 “야권 경쟁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도층이 아닌 지지층 선점”이라고 말했다. 비노 인사들이 저마다 호남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행보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그랬다. 8월 신당설에 휩싸인 천정배 의원은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 플랜’을 천명했다. 손학규 전 고문은 전남 강진 토담집에 칩거 중이다. 4·29 재·보궐선거 패자인 정 전 고문은 최근 전북 순창으로 귀향했다. 천 의원 측은 호남 신당이 아닌 전국적 신당을, 정동영·손학규 전 고문 측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상징 정치’에 나섰다는 분석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친노계 한 보좌관은 “DJ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미를 본 것은 지역주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영·호남 지역주의의 최대 희생양인 DJ는 1997년 대선에서 내각제를 고리로 JP(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손잡고 ‘호남+충청’ 연대를 꾀했다. 수도권에서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보다 비교우위에 섰던 DJ는 ‘DJP 연대’로 비 영남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부산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영남 분열-비영남 포위’라는 야권의 대선 승리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결국 충청 출신인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2.3%포인트 차로 꺾고 권좌에 올랐다.
참여정부 출범으로 친노계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자, 그 반작용으로 구민주계의 ‘호남 신당론’이 정치적 국면마다 야권발 정계개편을 이끌었다. 야권 내부가 ‘친노계 vs 비노계’, ‘영남 vs 호남’ 구도가 고착된 것도 이쯤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호남 경쟁과 관련해 “사실상 1990년대 초 DJ와 이기택(민주당 전 총재)의 싸움의 연장선상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1992년 대선 이후 ‘포스트 DJ’의 시대를 연 이기택은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 동교동계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동교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리꽂은 장경우 당시 경기지사 후보가 패하면서 야권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다. 정계복귀를 선언한 DJ는 새정치국민회의를, 이기택은 노 전 대통령 등과 민주당에 남았다. 1997년 과정에선 이기택과 조순 당시 대선 후보 측은 한나라당으로, 노 전 대통령 등은 새정치국민회의로 각각 넘어갔다. 야권 내 지역 경쟁의 서막을 연 셈이다.
그만큼 야권 인사들에게 지역 경쟁은 애증의 역사다. ‘천정배·손학규·정동영’ 트리오도 마찬가지다. DJ가 호남 민심의 전략적 지지 속에 ‘정계복귀→대권’ 수순의 절차를 밟았듯이, 이들도 호남을 고리 삼아 야권 재편에 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한 야권 인사는 “군부독재 시절마다 호남은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았느냐”며 “지금은 미우나 고우나 제1야당 쪽으로 기울었지만, 호남이 될 사람을 미는 ‘전략적 선택’에 나선다면, 상황은 급반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3%대 지지율에 그쳤던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호남 돌풍을 발판으로 ‘이인제 대세론’을 격침했던 대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친노의 반대급부로 ‘천정배 신당’, ‘천정배-정동영 연대설’, ‘손학규 정계 복귀설’ 등이 끊이지 않은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들은 ‘호남 지렛대 전략’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천 의원은 신당 창당설에 선을 그으면서도 “신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역당’, ‘기성 정치인’만으로 하는 일은 없다”며 “(신당 노선은) 온건한 진보 정도의 노선이 적절하다. 개혁 의지만 확고하다면, 얼마든지 보수세력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의원 측 관계자도 “신당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 정보에 대해 함구했지만, 여의도에선 10월 재보선을 겨냥한 신당추진위원회가 8월 베일을 벗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범친노계 한 인사는 “천정배 신당이 출범하더라도, 초기에는 전국적 신당보다는 호남 정서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며 “전국정당화도 호남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계복귀 1순위인 손 전 고문에게 호남은 애증, 그 자체다.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그는 두 번의 대선 경선에서 호남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다. 2007년에는 ‘정동영’이라는 산이 있었고, 2012년에는 대세론을 탄 문재인을 꺾지 못했다. 손 전 고문이 ‘한나라당 DNA’의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한 까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손 전 고문의 칩거를 놓고 마지막 승부수를 위한 일보 후퇴라는 관측을 내놓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해 손학규계인 양승조 새정치연합 의원은 “언행일치하는 분이기 때문에 천지개벽하지 않는 한 (정치판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단 1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호에 대한 정권교체 가능성이 사라질 때, 호남이 ‘손학규를 부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손 전 고문도 측근들에게 “나도 사람인지라 국민을 잘살게 하겠다는 정치 욕심이 간혹 곰팡이처럼 피어오를 때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손 전 고문의 ‘종로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최측근 사이에선 대선 후보로 직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손 전 고문이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며 “국민들이 원할 때 (대선판으로) 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재인 대체재’와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다.
정동영 복귀 시나리오도 힘을 받는 모양새다.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내려간 정 전 고문은 ‘전북 덕진’ 출마설에 휩싸였다. 덕진은 정 전 고문이 처음 원내진입의 문을 두드렸던 곳이다. 최근에는 정 전 고문 측이 덕진 쪽에 사무실을 개소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참여정부 당시 정풍운동을 이끈 ‘천정배·정동영’ 연대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재보선과 구도는 같고 사람만 바뀐 꼴”이라고 귀띔했다. 당시 국민모임에 합류한 정 전 고문이 외곽에 머무르던 천 의원에게 구애했다면, 이제는 천 의원이 신당을 만든 후 외곽에 있는 정 전 고문에게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들이 야권발 정계개편의 양대 변수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 평론가는 야권 신당 창당의 조건으로 ▲새정치연합의 세컨드 이미지 극복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대선주자 확보 등을 꼽았다. ‘천정배·손학규·정동영’ 트로이카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문재인의 아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 ‘분열의 화신’으로 전락하면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야권 중도파 의원은 “지금 상황에선 어림없다”며 “이들이 움직일 경우 ‘꼰대들의 연대’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노 트로이카의 정치적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