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며칠 전 처음으로 국민연금을 받았다. 숫자가 적힌 금액을 보면서 60년대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수제비 한 그릇먹고 오후를 사직공원 벤치에서 보냈다는 구절이 있었다. 백수가 넘치던 시대였다. 시인은 쌀 한 가마와 연탄 백 장 그리고 김치 한 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적어놓았다. 가난했던 그 시절 소고기 국밥은 환상쯤이 아니었을까. 60대 노인으로 접어든 나는 국민연금의 금액과 시인의 소망을 비교해 봤다. 쌀과 연탄 그리고 김치가 다 해결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굶어죽을 염려가 없어졌다. 행복이란 상대적이었다. 행복과 불행은 욕심그릇의 크기에 달린 것 같다. 욕심그릇이 작아야 행복이 넘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원로소설가 정을병 씨와 생전에 친했었다. 그는 문학이라는 신을 모시기 위해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밥과 김치로 한 끼만 먹는다면 일생 돈 걱정을 하지 않고 문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위한다면 그 정도의 각오를 해야 남에게 구걸하는 비겁함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한 일간지에서 상큼한 인터뷰기사를 봤다. 96세 노인에게 기자가 물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몇 살 때로 가고 싶으냐고. 그 노인은 6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젊은 날은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은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는 65세에서 75세까지 사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였다. 현인의 한마디는 메말랐던 내면을 촉촉하게 적시면서 영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내가 바로 그 나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축 처져있던 내가 힘을 얻었다. 노년의 행복을 찾기 위해 이삭줍기를 하듯 주위에서 지혜를 찾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참고 가야 하는 것도 있나보다. 고독이다. 도서관에서 죽은 조병화 시인의 시 전집을 다 읽었다. 그는 말년의 고독을 시로 썼다.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 살던 시인은 외로움을 앓았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아내의 텅 빈 방을 보면서 엄마를 찾았다. 인터뷰를 한 96세의 노교수도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법정스님의 글이 떠올랐다.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라고 외치면서 고독에 저항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노교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노교수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해 고급 와인을 마시는 걸 예로 들었다.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도 행복이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끝내거나 시 한 편을 읽고 눈물을 흘릴 때의 행복이 있다고 했다. 노교수는 지금도 강연을 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행복이란 소유가 아니라 성취였다.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해변에 모래성을 쌓고 행복해 한다. 목사이자 동양 철학자였던 김흥호 박사는 90대의 나이에도 매주 안성에서 이화여대까지 와서 성경과 불경을 강의했다.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는 진인이었다.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그는 밤새 눈이 내려 온통 은세계로 변한 세상을 보면서 가르치러 오니 너무 황홀하다고 고백했다. 늙음은 강가의 조약돌처럼 밀려난 소외가 아니다. 삶의 굴레를 벗고 진정으로 자유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서는 시기가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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