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뜻 따라…제동 걸리고 시동 걸고
구자학 회장의 딸 구지은 부사장(왼쪽)은 승승장구하다 보직해임된 반면 박찬구 회장의 딸 박주형 상무는 화려한 커리어의 시작을 알렸다.
#조직 안정 위해 딸 보직해임 시킨 구자학 회장의 ‘선택’
‘범 LG가’의 첫 오너 여성 기업인으로 불렸던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은 지난 2일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키워왔던 구매식자재사업본부장 보직에서 해임됐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1남 3녀 가운데 막내딸인 구 부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2004년 아워홈에 입사 후 외식사업을 진두지휘하며 2010년 전무로 승진한 뒤 올해 2월 부사장에 올랐다. 구 회장의 자녀들 가운데 유일하게 회사 경영에 참여해왔고, 지난 11년간 이뤄놓은 성과로 미뤄볼 때 아워홈 후계자가 될 것이 확실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그의 보직해임을 결정한 사람이 아버지 구 회장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재계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구 부사장이 직접 제기했다.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들의 승리. 평소에 일을 모략질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것. 또다시 12년 퇴보, 경쟁사와의 갭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언급한 것. 구 부사장은 보직해임이 결정된 2일에도 페이스북에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이라며 “변화의 거부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썩게 만든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는 인재들은 일 안하고 하루 종일 정치만 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다. 우수한 인재들이여 인내하고 버텨주시기 바란다”라는 글을 올렸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페이스북 글의 내용을 보면 회사 내부에서 다른 경영진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서만 2명의 대표이사가 경질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예고됐었다”고 설명했다. 아워홈은 지난 1월 구 회장의 오른팔 격이었던 이승우 전 사장이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 구 부사장이 영입한 CJ제일제당 출신 김태준 전 사장이 취임했다가 4개월만에 사직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구 부사장이 인천공항 식음료 사업 컨설팅을 위해 데려온 노희영 고문도 YG푸드로 자리를 옮겼다.
구 부사장의 올해 행보가 차기 경영권을 위한 세력 확대를 노린 것이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부사장 승진 이후 그는 회사 경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자금 흐름과 사용처 등을 확인하는 작업에 개입했고, 문제를 일으킨 임원들을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이어 외부인사 영입도 추진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인재개발원과 왓슨와야트 코리아 수석 컨설턴트를 거친 그는 사업을 키워내는 능력 이외에 자금·인력관리에도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금과 인력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은 후계 구도보다 고인 물을 걷어내겠다는, 다시 말해 아워홈을 개혁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자금과 인력은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것들이다. 박 부사장이 11년간 능력을 증명하는 동안 그가 뛰어 놀도록 다른 경영진들이 지켜만 본 것은 구 회장의 백그라운드를 믿고 자금과 인력 두 가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그런데 이걸 구 부사장이 건드리려고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회장의 딸이라도 권력은 나눌 수도 빼앗길 수도 없다. 구 부사장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기존 경영진들은 이러한 소문을 취합해 구 부사장이 회사를 흔들고 있다는 위협적인 내용을 구 회장에게 보고해 구 회장이 직접 딸의 보직을 빼앗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안정을 더 중요시한 구 회장으로서는 일단 기존 경영진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고 말했다.
구 부사장은 11년간 경영인의 삶에 첫 쉼표를 찍었다. 쉼표가 될지, 마침표가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보직 복귀도 아버지의 선택에 달렸다.
#‘믿을 사람’ 심으려는 박찬구 회장의 ‘카드’
지난 1일 금호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딸 박주형 상무는 69년 금호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오너가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화려하게 재계에 데뷔했다. 금호그룹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경영참여를 금기시해왔고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도 이를 적시하고 있었다.
지난 2012년 금호석화 주주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뒤 박 상무의 경영참여는 시기의 문제로 예상돼 왔는데, 이번에 전격적으로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박 회장은 평소에도 “능력이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언해 왔는데, 박 상무의 입사를 계기로 석유화학이라는 업종의 특성 때문에 비중은 크지 않지만 능력만 있다면 여성직원들도 임원으로 발탁시키겠다는 의지 또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계에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믿을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박 회장의 외로움 때문에 자식을 부른 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은 홀로서기에 나섰지만 여전히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갈등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은 형제간 싸움보다 한솥밥을 먹었던 전문경영인과 임원, 심지어 직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주고받을 때 받은 상처가 컸다. 한 사석에서 박 회장은 그때의 심정을 “신입사원 면접 때 직접 뽑았고 전날까지 웃으면서 아침인사를 했던 직원들이 태도를 바꿔 나를 비난하더라. 속내는 안 그럴 텐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겠다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그날 속이 많이 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금호석화는 최근 본사 직원 6명이 원자재 수입과정에서 특정업체에 물량을 몰아주고 거액의 뒷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다. 이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회사 측이 형사고발을 할 경우 박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로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을 수도 있음에도 박 회장은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을 가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에서 구매와 자금부문을 담당한다. 첫 데뷔 치고 회사의 핵심 업무를 맡은 것은 그만큼 오빠인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와 함께 회사를 올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아버지 박 회장을 든든히 지원해주길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박 상무의 깔끔한 일처리, 전 직장에서 쌓아온 관리능력, 오너가 자제라는 점 등 복합적인 요건들로 구매 및 자금운용의 투명성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정우 언론인